31 December 2014

The Hobbit: The Battle of the Five Armies, 2014
크리스마스날에 친구와 호빗을 보았당. 아 저번에도 느꼈지만 바드 넘 이쁘고ㅠㅠㅠㅠㅠㅠ바드가 이쁘고.. 바드가 이뻤다.
원작이 원래 이런건지 몰라돜ㅋㅋㅋㅋㅋㅋ대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황금의 무서움이 이 영화의 주제인걸까..^_ㅠ 그리고 타우리엘은 나올 때마다 넘 어이가 없어섴ㅋㅋㅋㅋㅋ엄청 억지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연애 전개랄까;ㅠㅠ 아님 진짜 겁나이쁜 배우를 쓰던가...흐읍......
이걸로 영화 반지의제왕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걸까 싶어서 아쉽기도 하고..ㅠㅠ특유의 분위기가 넘 좋았는데 흡흡.





놈놈놈, 2008
이게 08년도 작이라니 일단 눈물부터...ㅋㅋㅋㅋㅋㅋㅋ
예전에 모 카페에서 다들 놈놈놈을 엄청 덕질해서 언젠가 봐야지, 라고 생각한지 5년만에 보게되었다.ㅋㅋㅋㅋ 사실 딱 저 포스터만큼의 내용만 알고봤는데 딱히 별 내용은 없었어서. 서부극 국내버전 정도로 취급받고 있는 듯? 감상평: 정우성이 머싯었따ㅇㅇ... 요 근래 이병헌이 이미지가 너무 훅 가서..^^... 송강호야 송강호고 가끔 나오는 독립운동에 대한 잔상은 센스있지 못하다는 느낌.








Bread and Roses, 2000
이것도 입학때부터 봐야지라고 벼르다가 드디어 보게 된.ㅎㅎ.. 시골에 갈 때는 역시 쌓아둔 영화를 가져가는게 짱인 것 같다ㅋㅋㅋㅋ다 보게됨ㅋㅋㅋㅋㅋㅋ
보면서 계속 여자주인공이랑 지난 여름에 만난 Ivana라는 친구랑 겹쳐보였다. 사실 그 친구는 완전 부잣집에 엘리트라 주인공이랑은 정반대지만 목소리랑 영어하는 말투가 완전 똑같아서ㅋㅋㅋ
사실 요즘 투쟁들이 전부 엄청 오래되고, 이긴 경우가 거의 없어서 영화 속의 청소투쟁이 승리하는 걸 보고 친구한테 이 영화는 노조판타지라고 농담반으로 얘기했다ㄲㄲ... 그랬더니 노조 승리 선행퀘스트가 혁명이라몈ㅋㅋㅋㅋㅋㅋ
마지막에 여자주인공이 본국으로 돌려보내지는건 잘은 모르겠지만 켄로치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30 December 2014

시골 외가에 다녀오고, 펑펑 잉여 중. 엄마는 바로 다음날인 오늘 여행을 떠났다. 간다는 말도 없이 가버렸다.
외가에서 집으로 도착했는데, 엄마와 내가 없는 사이 고양이는 베란다에서 아마 잘 살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내가 다시 외출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모든 고양이 물건을 마당에 내놨다며 이제 고양이를 베란다에 들이지 말라고 한다. 고양이는 베란다에 배변을 보고 어디론가 간 후였다.
사실 요즘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고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고양이에게 쏟는 애정은 씻기고 집안에서 함께하고픈 그런 정도였고, 고양이 또한 점점 베란다에서 생활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그니까 나는 책임지지 못할 애정을 품고있었다. 자주 베란다에서 보게 되니 더 신경쓰이고 더 마음가고 그런.. 그러면서도 길냥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태도. 
책임질 수 있을만큼만 사랑해야지.. 라는 생각. 

21 December 2014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쓰는 글. 약 열흘동안 네 편의 글을 썼다. 사실 친구에겐 글을 쌌다고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더라.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글쓰기가 끝나고나니 그 해방감이란ㅎㅎ 각각 예술, 문학, 자본주의, 정당운동에 대한 글들을 썼다. 다 쓰고 돌이켜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를 했던 것 같고, 생각보다 이전의 글쓰기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입학한 후부터는 과제 빼고는 글 쓴 적이 거의 없으니.. 그래도 고등학교 때의 기억으로 글쓰기를 별 거 아닌 일로 여기고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꽤 어렵고 또 동시에 나에게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나 스스로 주제에 대한 생각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고, 글은 그 애매한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관심있는 것에 대한 글은 단숨에 써내려갔고 진짜 재미없는 건 삼일을 붙잡고 있어도 도저히 써지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도 막상 글로 옮겨내려하니 굉장히 막막했던 경험.
이제 '해야할 일들'은 대부분 끝났으니 당분간 하고싶은 일들을 해야겠다.

20 December 2014



어제 집회를 갔고, 언 발을 구르며 멍하니 서있다가 집회가 끝났다. 한마디씩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으러 갔고 술을 먹으러 갔다. 연말의 금요일은 모든 곳에 사람이 많았고 10명이 넘는 대인원을 받아주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 걸어 종각의 어느 맥주집에 들어갔고, 모두의 술을 사주신 선배가 취했다. 그냥 그럴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됐다. 그렇지만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 지하철이 아슬아슬하게 끊길 무렵 모두는 헤어졌고 나는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눈오는 연말의 금요일의 종각. 날이 그렇게 춥지 않아서 계속해서 걸었다. 문득 예전에 길위에서 술을 먹고 뛰었던 기억이 났다. 잠시 헤매다 왠지모르게 내 집과는 반대편 방향으로 걸었고, 아까 함께 술을 먹던 이들의 집이 있는 동대문이 나타났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버스를 탔을까? 택시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30분 정도 걸었을 무렵 '빈차'라는 표시가 없는 택시가 내 앞에 멈춰섰다. 반쯤 내려간 창문 너머의 기사님은 나에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들어가는 중이라고 하신다. 동료와의 통화에서 그는 어린 학생이 안타깝게 서 있어서 태웠다고 한다. 그는 또 나한테 택시태워주는 남자친구 하나 없냐 타박하신다. 그러게요, 아까 그 술자리에서... 모르겠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행사 하나를 준비하고 정리까지 끝냈더니 허리부터 아파왔다. 일하는 내내 담배따위 피지 않았는데 밥집에 들어가니 담배가 절실했다. 한 개피 입에 물으니 하루종일 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흡연을 했다. 입술에 물집이 생겼다. 일을 하며 내 라이터를 빌려갔던 이는 끝날때 쯤 돌려주었다. 나는 웃음에 자신이 없다. 사실은 왜 나를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저 심심해서라고 답하기에 활짝 웃어버렸다. 오늘은 맥주 말고 막걸리를 마셨다. 역시 취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취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맘놓고 술을 마셔본 적이 언제였던가. ... 사람들의 모든 것이 명확해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인간에 실망한 것도 아니다. 결코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수 없다. 그러면 대체? 내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열등감?
집에 도착하니 너무 피곤해서 애초에 쓰려던 글은 포기해버렸다. 오랜 시간 몸을 씻고 나니 그저 이불에 눕고 싶었다. 모든 거시적인 것들이 피곤했다. 그래서 어떤 예술, 글로 된 무언가를 행하고 싶어져 문학텍스트를 펼쳐들었다. 몇 페이지 못 읽고 다른 생각으로 가득찼다. 슬플 이유가 없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당황해하다가 갑자기 웃긴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말로 웃겨서 웃어버렸다. 웃었다는 사실이 웃겨서 또 한 번 웃었다. 책 읽기 역시 포기했다.
누군가 페이스북을 왜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신은 '인생전시'따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페이스북을 할까? 내 인생은 존나 힙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____ 한참을 생각했다. 자아의 문제일까. 어찌됐든 열등감 아닐까? 나의 것과 본질은 같지만 드러나는 양태는 반대인.
일이 끝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편한 상대만을 찾았다. 나의 반대편 옆자리에 앉은 이는 열차를 타기 위해 떠나버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지금의 내가 한심했다.
지하철에서 잠시 함께갔던 이는 다음주에 볼 수 있을까?
이제와서 웃기지만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관심도 부족한 걸지도 모르겠다. 점점 그런 확신이 들어서 무섭다. 그래서 나는 첫인상에 많은 걸 판가름해버린다. 심지어 얼마 전 '금사빠'라는 소리조차 들었다. 이번에 그런걸 인지한 채로 어떤 그룹의 사람들을 만났다. 열다섯명 남짓한 그 사람들은 한달 동안 만나본 결과 모두 알면 알수록 첫인상과는 달랐다. 작년의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우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해결되었다. 두 번의 경험 모두 그것의 선상 위였다고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좋아했던 선배는 내게 완벽한 존재였는데, 지금에서야 그의 균열  지점들이 보인다. 언제나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연애는 내 상상 속에서만 우상인 존재와의 연애였기에 현실의 나는 고통받았던 걸까. 당시의 해결은 지금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런 우상이라는 존재는, 내게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다. 처음 호감이 가더라도 금방, 몇 주 안에 그(들)에게 질려버리고 만다. 쉽게 마음이 가고 쉽게 그들을 재단해버린다. 어찌보면 그들에게 예의가 아닌. 그런데 애초에 나의 욕구는 왜 해결되어야 하는가? 그러니까 나는 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우상이 필요한가? 전혀 모르겠고 이런 상태에서 하는 연애는 분명 좋을리가 없다. 나는 여기에서 지금의 내가 연애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다른 이들은 다른 데서 찾는걸까? 아니면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 그렇다면 나에 대한 고민을 이만큼이나 한 것일까?
거시적인 것에 대한 사고가 힘들다. 지난 4월에도 그랬다. 어제부터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의 우울은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몰아칠 때 나는 어떻게해야 시민이길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애써 잊고 있던 것은 자꾸만 눈 앞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10 December 2014

깝깝하다~_~ ㅠㅠ.... 아 왜케 외롭지 요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끄아아아ㅡㅇㄴ힌ㅇ히ㅏㄴ혼ㅁ히ㅏ;ㅗㄴㅇ

06 December 2014

카트, 2014
어쩌다보니 모 노조에서하는 공동상영에서 함께 보게되었다 ㅋㅋㅋ
아이돌 머시기가 잘생겼나 반신반의했더니 생각치도 않은 김강우가 너무 잘생겼다ㅋㅋㅋㅋㅋㅋㅋㅋ키크고 잘생기고 목소리 좋고.. 와 나 요즘 이런 사람들 넘 좋...ㅁ7ㅁ8
마지막 연출이 구렸지만 그거 빼고는 기대이상이었다. 2000년대의 파업전야라는 표현을 글쎄, 그만큼의 넘치는 비장함은 없지만 비정규직이라는 현시대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잘 보여준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것 같다. 비정규직, 시급, 성과급, 하청 모두 본질상 동일한 문제다. 일단 노조 파업을 가지고 어떻게 더 표현해야 좋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니, 감정적으로 표현한 걸 좋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파업은 대중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고, 그 필요에 잘 따른 것 같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원령공주 (もののけ姫), 1997
초등학교 때(!) 보고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 사실 어릴 때 봤을 때 이해가 하나도 안 갔는데, 지금보니 그럴만도 했다(..) 단지 당시의 기억으로 남는 건 여주인공이 매우 머싯었고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는 어렴풋한 잔상들ㅋㅋ
작품 속 세계를 문명 전체로 본다면 감독은 문명 전체에 대해 묻고 있다. 인간 삶의 상 자체를 자연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전쟁과 죽음뿐이라는 메시지.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매우 긍정적인 메시지다. 나는 여기서 세대차이가 느껴졌다ㅋㅋㅋㅋㅋㅋ핵발전이 이용되는 세상은 이미 늦었다. 작품 속에선 신이 죽고 자연이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았지만, 핵발전으로부터의 회복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셀 수 없다. 이번엔 현실쪽이 훨씬 많이 암울하다.
인간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시도한 것도 좋았다. 철을 만드는 마을의 지도자인 '에보시'는 인간에게는 매우 좋은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배제된 자들을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여 보살펴 줄 뿐만 아니라 역할을 주고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자연을 다룰 수 있는 기술 발전에 대한 역사였던 만큼, 주변의 산을 깎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 또한 인간으로서 그리 부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자연과 인간의 조화 혹은 상생을 무너뜨리는 지점에서 한계가 온다고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시작해서 인간 발전의 방향을 바꾸자 등등.
그렇다면 누가 재앙을 막는가? 뭐 작품의 제목은 원령공주이긴 하지만 주인공은 동북부 끄트머리 마을의 '아시타카'다. 서쪽 끄트머리 마을에서 발생한 재앙신에 의해 동쪽 끄트머리 마을에서 피해를 입은 그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서쪽을 향해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인간 마을의 지도자인 '에보시'와 들개의 자녀인 원령공주 '산'의 중간에서 끊임없이 그 둘을 조정하려고 든다. 인간의 이익만을 이야기하는 에보시도, 인간이 아닌 자연의 길을 택한 산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 아시타카는 그러면서도 둘을 포기하고 독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계속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국가의 욕망에 대한 물음이 있다. 에보시가 이끄는 마을은 화약을 사용하는 등 기술이 발달하긴 했어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왕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등 국가라는 체제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에서 마을에 병사들을 파견하기도 하고, 짐승신과의 싸움에서도 국가의 병사들과 마을의 남성들이 함께 싸운다. 그러나 바로 이 장면의 묘사에서 감독은 민중과 국가 권력의 이질성을 드러낸다. 멧돼지들과의 싸움에서, 병사들은 마을 남성들을 거의 미끼로 사용하다시피해서 많은 사상자를 낳는다. 그리고 뒤이은 장면에서, 아시타카가 여성들만이 남은 마을이 사무라이에게 공격당했다며 마을 남성들에게 어서 돌아가라고 하지만 병사들은 허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숲을 달려 에보시에게 도착한 아시타카가 에보시에게도 마을로 돌아가라며, 당신의 적은 짐승신들이 아니라 마을의 침입자인 사무라이들이라고 한다.
애초에 '시시가미'의 머리는 마을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다. 국가의 명령이고 욕망이다. 그러나 그 욕망의 수행자는 국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민중들이며 그들은 가장 먼저 희생되었다. 민중은 '시시가미'와 조화할 수 있지만 국가는 '시시가미'의 머리를 원한다. '시시가미'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우리의 욕망인 것 같지만 사실은 교묘하게 은폐된 국가의 욕망인 것을. 우리 손에 쥐어진 화구가 누가 쥐어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시시가미의 머리라니! 정말 비유가 멋진 작품이구나 ㅋㅋ

03 December 2014

아 정말 내 선배 넘 무서울정도로 예리하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이블에 잠깐 같이 앉아있더니 나한테 하는 말이 금사빠라몈ㅋㅋㅋㅋㅋ그렇게 쉽게 들켜버리다니 하핳....
그건 제가 얼빠라서 그렇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