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November 2018

덕질 만 3개월 찍고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내가 왜 이 남자애들을 좋아하나 약간 현타가 밀려온. 물론 너무너무너무 이쁘지만..ㅎㅎ 그냥 덕질 자체가 좀 힘든 것 같음 왜냐면 요즘 넘 피곤해서 에너지0

28 November 2018

부국제에서 본 대만 다큐의 두 청소년들처럼. 그들에게 하루하루는 큰 변화이기에 고작 3개월 만의 만남은 많은 것들이 변화해있다. 그에비해 나에게 ‘2년 전’이란 ‘얼마전’과 동일한 의미다.

25 November 2018

15살에 읽었던 소설을 지금 다시 읽고있다. 장르가 비엘인소라는게 웃기긴해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이 점이 정말 많이 웃긴데.. 암튼ㅋㅋㅋㅋㅋ10년 만에 읽는데 감회가 정말 복잡하다. 분명 이제 구리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01학번 25살이다. 내가 15에서 25살이 될 때까지 그 사람들, 그 인물들은 텍스트 속에서 여전하다. 소설은 대단한 것 같다. 마치 내가 이 글을 처음 읽었던 열다섯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22 November 2018

진짜

무대 위에서 자신이 연기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되는 배우는 어떤 상태일까. 무엇보다 슬플 것 같다. 그 연극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사실때문에. 집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상담을 통해 요즘 깨닫고 있는건 꽤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나는 가족을 가족놀이, 역할극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필요한 말만 내뱉고 부모도 그러고있다고 생각했다. 역할극이란게 너무 티나는 역할극은 망한 역할극이다. 내 가족은 다들 망한 역할극을 수행했다. 열심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면 그 역할극을 수행하는 배우인 어린 나는 무슨 상태였을까. 아마 초등학생 때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남이 들으면 화날만한 일에도 화나지 않아했다. 그냥 내 부모를 걱정했다. 그건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열셋 열넷 즈음부터는 현타가 오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더 이상 현타오지 않는 강도 높은 역할극을 하고싶어했다. 허접한 역할극이 아닌 정밀하기 때문에 역할극으로 보이지 않는 역할극, 관계맺기에 대한 열망이 점점 높아져만갔다. 서로 의존하지 않는 관계는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진짜'는 따로있다고, 내 주변은 대체로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 소중하게 여긴 관계들을 놓치고 스스로 망쳤다. 의존하거나 의존하게 만드는 관계의 끝은 좋을 수가 없으니까.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인연들도 내가 조금만 더 들여다보았으면 아마 그들과도 꽤 의미있는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친구들이다.
관계맺기에, 의존하기에 그렇게 빠져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거기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는 점도. 빠져나오고 보니 싫어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더 이상 싫지 않다. 내가 그들을 싫어했던 것도 동시에 그들이 나로하여금 느꼈을 당혹감과 의존으로부터 오는 열등도 이해하게 됐다. 그렇게 건강한 관계를 매일같이 말했는데 막상 그 때는 그게 뭔지조차 몰랐다. 과거에 나와 이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과 다시 대화하고 싶다. 이제는 뭔지 좀 알 것 같다고. 아쉽게도 그들은 지금 곁에 없다.
내가 관계에 집착한다는 건 당연히 어느정도 알고 있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니까 그냥 생각이 빙빙 돌 뿐이었다. 근데 아마 그때도 의식적으로 가족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 그들은 무조건 나랑 관계없는 타인이어야 했으니까. 지금은 상담을 통해 그들(부모)에게 영향받았음을 인정한다.
전애인도 떠오른다. 내가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과도기에서 만난 사람이라 중간 즈음 나 스스로에게 현타가 왔다. 맨날 하던 방식으로 관계맺기를 그와 시도했으며, 동시에 더 이상 그런식으로 관계맺고싶지 않아했다. 어느순간 내가 '과거'로 남겨둔 것들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와 관련된 모든 것, 그 관계맺기, 전애인마저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얘기를 그나마 좀 나눴던 사람이 스무살 때 만났던 스물 다섯의 선배여서 자꾸 내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를 생각하게 된다. 내 스물 다섯은 특별하고 또 중요할 거라고 은연 중에 그렇게 항상 생각해왔다. 그냥 이제 좀 내 유년에 대해 거리두기를 할 수 있게된 것 같다. 내 서른은? 마흔은? 어떨까. 모르겠다. 배역에서 자꾸 튕겨져나오는 배우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든게 내 맘 같지 않은 상황에서 진짜인 나를 내보이면 쉽게 긁히고 상처받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진짜인 나는 언제쯤 등장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안다. 진짜는 따로 없다는 것을.

21 November 2018

너무 보고싶다. 8년 째 이러고있는게 존나 똘추같다는거 아는데 그래도 보고싶다. 한 번도 제대로 좋아한다고 얘기해본 적이 없어서 아쉽다. 18, 19에 겪었던 감정들도 사실 이미 망하고 난 후라 ‘좋아한다’고 스스로 표현하지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삼켜진 감정들이 이제서야 생각난다. 아, 내가 걔를 좋아했었지 하고 존나 똘추같이 이 씨발 ㅠㅠ 그 때를 생각하면 17에 좋아하던 인간관계가 다 틀어져서 힘들었다라는 생각이 주로 들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당시에 많이 좋아했던거고. 17뿐만아니라 18, 19에도 많이 좋아했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모습은 17에 머물러있을지라도.
얘 뿐만이니라 요즘 괜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번 더 보고싶다. 좋아하는 것을 만들지 않으려고, 떠날 마음을 처음 먹었던 14 즈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는데 꽤 괜찮은 인생이었는지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었다. 다 보고싶다.
아 논문쓰기싫다 재밌는게 하고싶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일단 보랩이 보고싶다

20 November 2018

아빠와의 일상적인 다툼을 상담사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이외의 사람에게 아빠와의 일을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다. 상담사도 엄마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연장자가 그거 하나 못 해주냐고.

다툰 후에 스스로에 대한 감정이 어땠냐고, 스스로를 비난하진 않냐고,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책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몰라도 부모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비난한 적은 없다고 했다. 애초에 부모와의 관계에서의 ‘나’는 ‘내’가 아니니까. 상담사는 나중에 언젠가 부모와의 관계를 자책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 당시의 나는 그런 선택지밖에 없었음을 기억하고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30년 후에 이 말이 부디 기억이 나기를.

오늘은 좀 슬픈 것 같다. 이것저것. 이 집에서 나와 가장 말이 잘 통하는 고양이와 이별할 날이 다가온다는 점이 특히.

서로를 이해하는 내 가족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런건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사치였다. 그냥 나 혼자 모든걸 묻어둔 채 도망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서로 좋아하는 가족을 바랬을 지도 모른다.

19 November 2018

가끔 살만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오늘 저녁은 좀 살만하다.

18 November 2018

무슨 많은 말들이 떠올랐는데 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요즘은 나간다는 생각 하나로 버티고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좀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대신 그만큼 집에 있기 버거워졌다.

14 November 2018

부모한테 지지않으려고 악착같이 살아왔다. 당신들은 절대 내 삶을 망칠 수 없다고. 결국 난 내 고향을 부모때문에 떠난다. 당신들은 아마 나에게 최고를 줬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최악을 숨겼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왜 운동을 할까에 대한 답을 이제서야 알아챈 것 같다.

13 November 2018

감정이 없는 울음은 뭘까. 근래에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문학적이다.

11 November 2018

아 졸논 개스트레스!!!!!!!!!!!!!!!!!!!!!!!!!!!!!!아앆!~!!!!!!!!!!!!!!!!!!!!!!

그것과 별개로 어제 독일 친구가 나한테 여자랑 남자로 태어날 수 있으면 뭐로 태어나고싶냐고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왜냐면 성별은 여남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하지 않기떔에..)하니까 걔는 남자애들이 멋있으니까 남자로 태어나고싶다고 했다. 그리고 약간 나는 할 말을 잃었음. 그게 뭔지 아는데(지금 ㄹㅍ을 중심으로 탈코가 이슈인 것에 이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음) 그게 또 맞는 말은 아니어서. 남자라서 멋있는게 아니라 (가부장)사회에서 멋있는 건 남자만 할 수 있다고 배우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잘 전달이 안 될 것 같아서 걍 쟤네도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지만 말해보면 구릴거라고 말하고 끝냈다. 근데 얘가 하는 생각이 나도 너무 정말 뭔지 잘 알고 왜냐면 초딩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어서ㅋㅋㅋㅋㅋ여혐맥스찍던 나의 초딩시절... 암튼 그게 그게 아니라는 걸 얘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럼 계속 이런저런 의문은 들겠지만(여성이란 뭐지... 등등의) 그만큼 갇혀있는 데서 벗어나는 기분도 들 것이기 떔에.

07 November 2018

전에도 쓴 것 같은데, 나 스스로 외면해왔던 내 삶이 누군가에 의해 이해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는 건 눈물부터 나는 것 같다. 아동청소년의 미성숙함이 용납되지 않는 환경 역시 학대라는 글을 보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03 November 2018

요즘 상담을 하면서 어릴 때 기억을 많이 끄집어내기도하고 어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어서 좀 더 생생하게 학생시절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리고 방금 깨달은 건 내가 되게 항상 친구 한 명과 매년 독점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거다. 당시에도 원래도 스스로 친구 한 명이랑 1년 동안 단짝으로 지내다가 학년 바뀌면 멀어지고 이런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독점적인 관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사실 대학 와서도 크게 안 바꼈고 지금 만나는 친구들도 대부분 1:1로 만나는 친구들임... 요즘 나 자신에 대한 캐해를 좀 잘하게 된 것 같음. ㅋ... 암튼 중고등학생땐 정말 감정적으로 1:1로 매달리는 관계를 심하게 원했었고 그게 결국 17살 겨울에 터졌던 게 아닐까. 그 일이 유별난 사건인 게 아니라 내 역사 중 하나로 읽으려는 노력을 계속 하고있다. 분절된 내가 아니라 하나의 나로 나를 이해하기. 뭐랄까, 그래야 그때의 기억들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부던히 새로운 관점으로 기억을 재해석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다. 그래야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분절된 채 ‘나’로 인정하지 못하고 나라는 인간이 어지러이되는 것 같다. 살면서 그게 제일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스물 다섯 선배가 스무살 나에게 묻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 스물 다섯은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유학을 가고싶어했는지 드디어 깨닫고 있다. 그때 분명히, 동네 신호등에 서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싶다고 생각했다. 사실로부터가 아니라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거다.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간신히 깨달은 것이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부모가 불화인 경우 영향이 어렸을 바로 나타나거나 시간이 흐른 나타난다고 했다. 그런 말들, 인생이 이해받을 있는 듯한 말들에 때마다 벅차오른다


어제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다행히 그때의 나는 잘하고 있었던 같다. 항상 자고있는 주변으로 모였었다는 얘기에 안심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나갈지가 고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