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바타 그리고 가상세계 - 정기도
우선 시간의 측면에서 볼 때 대량 복제 매체들은 경험의 즉흥성, 순간성을 야기했다. 이러한 경험의 즉흥성과 순간성은 이어서 빠른 순환성과 반복 가능성을 불러온다. 이러한 시간성은 경험되는 대상을 찰나적인 느낌으로 전환시킨다. 이렇게 되면 경험 대상에 대한 이미지만 남게 되고, 경험되는 대상 자체보다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게 된다. 이는 결국 경험하는 주체의 정체성을 이미지가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 110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 김용규
정리하자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 그레트헨이 갔던 무한한 자기 체념을 통한 '종교적 구원의 길'과 2부에서 파우스트가 보여준 무차별한 자기실현을 통한 '인간적 구원의 길'이 그것이지요. 전자에 비해 후자가 '세속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메피스토 펠레스에게 대답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무한한 자기 체념'을 할 것인가? 아니면 '무차별한 자기실현'을 할 것인가?
p. 52
"모든 꽃들이 시들 듯이/청춘이 세월 속에 무릎을 꿇듯이/인생의 모든 단계는 지혜를 꽃피지만/지혜도 덕망도 잠시일 뿐/영원하지 않다/그러니,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마음은 이별을 준비하고 새 출발하라/용감히, 그리고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이끌림에 몸을 맡겨라./새로운 시작에는 언제나 마술적 힘이/우리를 감싸, 사는 것을 도와주리니...."
-헤세 <삶의 단계>중에서
p. 71
그리고 대중적 인간으로 여론이라는 환영을 따라 사는 근대 시민사회의 소시민적 삶에 대해 "겉치레로 살지 말라!", "비본질적으로 살지 말라!" 또는 "네가 마당히 되려는 것으로 살아라!"라고 외쳤던 겁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실존주의라고 부르는 철학적 · 문학적 사조에 불을 붙였지요. 20세기 전반에는 폭탄처럼 터져 한 시대를 불사른 것도 사실입니다. 그 결과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카뮈, 마르셀, 베르댜예프 등에 의해 확립된 실존주의는, 형식과 내용에서 각각 다양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 의한 개인의 노예화에 대한 반항,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용기,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라는 성격을 공통적으로 갖게 된 것이니까요.
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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