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부채인간
p.29
"낡은 것은 죽어 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바로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다."
p.32-3
진보가 시간적 개념이라면, 좌파는 지형적 개념이다.
신자유주의가 종식기에 다다른 지금 이 시점에서 미래는 열려진 미래이다. 시계열적 개념인 진보는 더 이상 준별 기준으로 적절하지 않다.
사회주의, 생태주의, 코뮨주의와는 달리 좌파는 궁극 목표에 관한 명칭이 아니고 현 상태의 종식에 대한 입장을 강조하는 명칭, 현 상태로부터 대안적 사회로 나아가는 경로와 전략을 부각시키는 명칭, 당대의 과제를 중심에 둔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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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2
임금 노동자들도 고통을 받았다. 물가 상승의 시대는 거의 언제나 임금 상승의 시대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만사가 결국은 잘 풀렸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런 생각에는 중대한 함정이 있다. 그 함정이란 임금은 결코 물가와 똑같은 속도로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 상승은 보통 싸워서 얻어야 한다. 임금 상승은 대개 탄압에 부딪히는 의식적인 대중 행동으로 획득하지만, 물가는 시장의 작용으로 상승한다.
p.260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전진을 시도할 때마다 전적으로 적의 무기로 사용돼 온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사실상 전혀 제공하지 않아 온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늘 사용자 계급의 이익에 봉사해 온 과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p.261
“(...) 어떤 노동자가 경제학은 파업을 '비난'하며…… 노동 시간을 제한하자는 의견에 눈을 흘기지만, 자본 축적에는 '찬성'하고 시장 임금은 '공식 허용'한다는 말을 들을 때, '경제학이 노동자를 적대하기 때문에 노동자도 경제학을 적대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인 듯하다. 이 새로운 이론 체계가 혹시 사용자를 위해 고안된 체계가 아닌가 의심하고 그것을 거부하고 부인하는 것을 노동자가 현명한 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듯하다.”
p.280 “…경제 구조라는 진정한 토대 위에서 법적 · 정치적 상부구조가 발생하며, 사회적 의식의 일정한 형태는 이 토대에 조응한다. 물질 생활의 생산양식이 삶의 사회적 · 정치적 · 정신적 과정의 일반적 성격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p.285
한마디로 당신들은 우리가 당신들의 재산을 없애고자 한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정확히 그렇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
사유 재산이 폐지되면 모든 노동이 중지되고 곳곳에서 게으름이 만연할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돼 왔다. …….
이런 의견에 따르면, 부르주아 사회는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이미 오래 전에 파멸됐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 성원들 가운데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 무엇이든 얻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p.287
우리는 국가가 계급을 초월한 존재라는 말을 듣는다. 즉, 우리는 정부가 지위가 높은 자든 낮은 자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오늘날의 사회는 사유 재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보루ㅡ즉 사유 재산ㅡ에 대한 공격은 무엇이건 국가의 저항에 부딪힌다. 국가는 필요하다면 유혈낭자한 폭력도 불사한다.
p.343
그럼에도 자본가들 스스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나라들도 있다. 경제생활의 붕괴 정도가 너무 크고 노동 계급의 전진이 너무 위협적이어서 자본가들은 중앙 조정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기관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자본가의 기관이어야 한다. 그런 기관은 노동 계급의 투쟁력을 분쇄해야만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가들은 파시즘에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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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7
중요한 점은 앞으로 일어날 위험을 줄이려는 금융의 의도, 다시 말해 미래와 가능성을 현재의 힘 관계로 고정시키려는 금융의 의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금융의 혁신은 단 한 가지의 목적만을 갖는다. 미래의 대상화를 통해, 미래를 사전에 소유하는 것이다. 이 대상화는 노동 시간의 대상화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시간을 대상화하여 사전에 소유한다는 것은, 미래가 가지고 있는 선택과 결정의 가능성을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의 재생산에 종속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채는 피고용자와 국민 전체의 현재 시간표를 전유할 뿐만 아니라 비연대기적 시간, 곧 각자의 미래와 사회의 미래를 전체로서 선취한다.
p.82
현대 사회 및 경제를 가로지르는 요청은ㅡ인지가 아니라ㅡ경제적 ‘주체(인간 자본, 자기의 기획자)’가 되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이는 실업자에게나 공공복지 수혜자, 소비자, 최저소득 노동자, 극빈자, 이민자 모두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명령이다. 부채 경제에서 인간 자본이나 자기 기획자가 되라는 것은 유동적이고 금융화 된 경제의 비용과 위험을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다. 물론 이는 기술 혁신으로 인한 비용과 위험이 아니라 임시직, 가난, 실업, 부족한 공공복지에 대한 비용과 위험을 수수로 감당하라는 의미이다.
p.89
채권자-채무자 관계는 임금노동·시장·상품은 물론, 공동체 및 인간 마음의 가장 고귀한 감정(신뢰·욕망·타인의 인정 등)까지도 경제적 ‘가치’ 생산 및 ‘가치 생산’ 증대에 대한 인간의 종속에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의 ‘환상’을 보여줄 뿐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소외는 대출과 함께 완성된다. 왜냐하면 부채의 경우, 착취의 대상은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윤리적 노동 자체이기 때문이다.
p.91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의 지불 능력은 곧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측정이다.
p.93
(...)여기서 돈의 개념은 노동이 아니라 실존, 개별성 및 인간적 도덕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돈의 재료는 노동 시간이 아니라 실존의 시간이다.
대출 시스템에 속하는 인간 안에서 철폐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인간은 돈으로 변화한다. 즉 다시 말해 돈이 인간으로 육화된다. 인간의 개체성, 인간의 도덕성은 상업적 상품인 동시에 돈의 실존적 재료로 변모한다. 돈의 영혼이 소유하는 육체, 재료는 ㅡ이제 더 이상 돈과 종이가 아니라ㅡ 나의 인격적 실존, 나의 살과 나의 피, 나의 사회적 덕성, 나의 사회적 평판이다. 대출은 화폐의 가치를 돈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살,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다.
p.99
이때의 ‘일관성’과 전략은 “돈이 돈을 낳는다”고 주장하는 A-A´의 논리이며, ‘비합리성’을 감추고 있다. 이른바 ‘자유주의적인’ 거의 모든 시대에 나타나는 이런 ‘일관성’과 전략은 ㅡ거의 자동적으로ㅡ 가장 폭력적인 위기로 연결되었으며, 그때마다 매번 권위주의적 정치로 나아가는 문을 열었다(제1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으로 나타난 바 있다).
p.106
지각·감각·지식을 가지고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행동에 나서기에 아직 충분치 못하다. 행동 역능이 펼쳐지기 위해서는, 가능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을 넘어서야 하며(키르케고르는 “가능성이 없다면, 나는 질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계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 만들어지고 있는 열린 시간, 다시 말해 선택의 가능성, 실존의 위험 및 가능한 분기점들을 포함하는 ‘현재’를 내포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채가 무력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예견불가능한 분기점들 및 가능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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