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7

카트, 2014
어쩌다보니 모 노조에서하는 공동상영에서 함께 보게되었다 ㅋㅋㅋ
아이돌 머시기가 잘생겼나 반신반의했더니 생각치도 않은 김강우가 너무 잘생겼다ㅋㅋㅋㅋㅋㅋㅋㅋ키크고 잘생기고 목소리 좋고.. 와 나 요즘 이런 사람들 넘 좋...ㅁ7ㅁ8
마지막 연출이 구렸지만 그거 빼고는 기대이상이었다. 2000년대의 파업전야라는 표현을 글쎄, 그만큼의 넘치는 비장함은 없지만 비정규직이라는 현시대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잘 보여준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것 같다. 비정규직, 시급, 성과급, 하청 모두 본질상 동일한 문제다. 일단 노조 파업을 가지고 어떻게 더 표현해야 좋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니, 감정적으로 표현한 걸 좋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파업은 대중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고, 그 필요에 잘 따른 것 같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원령공주 (もののけ姫), 1997
초등학교 때(!) 보고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 사실 어릴 때 봤을 때 이해가 하나도 안 갔는데, 지금보니 그럴만도 했다(..) 단지 당시의 기억으로 남는 건 여주인공이 매우 머싯었고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는 어렴풋한 잔상들ㅋㅋ
작품 속 세계를 문명 전체로 본다면 감독은 문명 전체에 대해 묻고 있다. 인간 삶의 상 자체를 자연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전쟁과 죽음뿐이라는 메시지.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매우 긍정적인 메시지다. 나는 여기서 세대차이가 느껴졌다ㅋㅋㅋㅋㅋㅋ핵발전이 이용되는 세상은 이미 늦었다. 작품 속에선 신이 죽고 자연이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았지만, 핵발전으로부터의 회복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셀 수 없다. 이번엔 현실쪽이 훨씬 많이 암울하다.
인간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시도한 것도 좋았다. 철을 만드는 마을의 지도자인 '에보시'는 인간에게는 매우 좋은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배제된 자들을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여 보살펴 줄 뿐만 아니라 역할을 주고 구성원으로서 자립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자연을 다룰 수 있는 기술 발전에 대한 역사였던 만큼, 주변의 산을 깎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 또한 인간으로서 그리 부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자연과 인간의 조화 혹은 상생을 무너뜨리는 지점에서 한계가 온다고 감독은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시작해서 인간 발전의 방향을 바꾸자 등등.
그렇다면 누가 재앙을 막는가? 뭐 작품의 제목은 원령공주이긴 하지만 주인공은 동북부 끄트머리 마을의 '아시타카'다. 서쪽 끄트머리 마을에서 발생한 재앙신에 의해 동쪽 끄트머리 마을에서 피해를 입은 그는,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서쪽을 향해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인간 마을의 지도자인 '에보시'와 들개의 자녀인 원령공주 '산'의 중간에서 끊임없이 그 둘을 조정하려고 든다. 인간의 이익만을 이야기하는 에보시도, 인간이 아닌 자연의 길을 택한 산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 아시타카는 그러면서도 둘을 포기하고 독자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계속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국가의 욕망에 대한 물음이 있다. 에보시가 이끄는 마을은 화약을 사용하는 등 기술이 발달하긴 했어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왕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등 국가라는 체제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생활을 한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에서 마을에 병사들을 파견하기도 하고, 짐승신과의 싸움에서도 국가의 병사들과 마을의 남성들이 함께 싸운다. 그러나 바로 이 장면의 묘사에서 감독은 민중과 국가 권력의 이질성을 드러낸다. 멧돼지들과의 싸움에서, 병사들은 마을 남성들을 거의 미끼로 사용하다시피해서 많은 사상자를 낳는다. 그리고 뒤이은 장면에서, 아시타카가 여성들만이 남은 마을이 사무라이에게 공격당했다며 마을 남성들에게 어서 돌아가라고 하지만 병사들은 허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숲을 달려 에보시에게 도착한 아시타카가 에보시에게도 마을로 돌아가라며, 당신의 적은 짐승신들이 아니라 마을의 침입자인 사무라이들이라고 한다.
애초에 '시시가미'의 머리는 마을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다. 국가의 명령이고 욕망이다. 그러나 그 욕망의 수행자는 국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민중들이며 그들은 가장 먼저 희생되었다. 민중은 '시시가미'와 조화할 수 있지만 국가는 '시시가미'의 머리를 원한다. '시시가미'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우리의 욕망인 것 같지만 사실은 교묘하게 은폐된 국가의 욕망인 것을. 우리 손에 쥐어진 화구가 누가 쥐어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시시가미의 머리라니! 정말 비유가 멋진 작품이구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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