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1



어제 집회를 갔고, 언 발을 구르며 멍하니 서있다가 집회가 끝났다. 한마디씩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으러 갔고 술을 먹으러 갔다. 연말의 금요일은 모든 곳에 사람이 많았고 10명이 넘는 대인원을 받아주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 걸어 종각의 어느 맥주집에 들어갔고, 모두의 술을 사주신 선배가 취했다. 그냥 그럴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됐다. 그렇지만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 지하철이 아슬아슬하게 끊길 무렵 모두는 헤어졌고 나는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눈오는 연말의 금요일의 종각. 날이 그렇게 춥지 않아서 계속해서 걸었다. 문득 예전에 길위에서 술을 먹고 뛰었던 기억이 났다. 잠시 헤매다 왠지모르게 내 집과는 반대편 방향으로 걸었고, 아까 함께 술을 먹던 이들의 집이 있는 동대문이 나타났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버스를 탔을까? 택시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30분 정도 걸었을 무렵 '빈차'라는 표시가 없는 택시가 내 앞에 멈춰섰다. 반쯤 내려간 창문 너머의 기사님은 나에게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다. 들어가는 중이라고 하신다. 동료와의 통화에서 그는 어린 학생이 안타깝게 서 있어서 태웠다고 한다. 그는 또 나한테 택시태워주는 남자친구 하나 없냐 타박하신다. 그러게요, 아까 그 술자리에서... 모르겠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행사 하나를 준비하고 정리까지 끝냈더니 허리부터 아파왔다. 일하는 내내 담배따위 피지 않았는데 밥집에 들어가니 담배가 절실했다. 한 개피 입에 물으니 하루종일 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흡연을 했다. 입술에 물집이 생겼다. 일을 하며 내 라이터를 빌려갔던 이는 끝날때 쯤 돌려주었다. 나는 웃음에 자신이 없다. 사실은 왜 나를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저 심심해서라고 답하기에 활짝 웃어버렸다. 오늘은 맥주 말고 막걸리를 마셨다. 역시 취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취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맘놓고 술을 마셔본 적이 언제였던가. ... 사람들의 모든 것이 명확해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인간에 실망한 것도 아니다. 결코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수 없다. 그러면 대체? 내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열등감?
집에 도착하니 너무 피곤해서 애초에 쓰려던 글은 포기해버렸다. 오랜 시간 몸을 씻고 나니 그저 이불에 눕고 싶었다. 모든 거시적인 것들이 피곤했다. 그래서 어떤 예술, 글로 된 무언가를 행하고 싶어져 문학텍스트를 펼쳐들었다. 몇 페이지 못 읽고 다른 생각으로 가득찼다. 슬플 이유가 없는데 자꾸 눈물이 나왔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당황해하다가 갑자기 웃긴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말로 웃겨서 웃어버렸다. 웃었다는 사실이 웃겨서 또 한 번 웃었다. 책 읽기 역시 포기했다.
누군가 페이스북을 왜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신은 '인생전시'따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페이스북을 할까? 내 인생은 존나 힙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____ 한참을 생각했다. 자아의 문제일까. 어찌됐든 열등감 아닐까? 나의 것과 본질은 같지만 드러나는 양태는 반대인.
일이 끝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편한 상대만을 찾았다. 나의 반대편 옆자리에 앉은 이는 열차를 타기 위해 떠나버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지금의 내가 한심했다.
지하철에서 잠시 함께갔던 이는 다음주에 볼 수 있을까?
이제와서 웃기지만 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관심도 부족한 걸지도 모르겠다. 점점 그런 확신이 들어서 무섭다. 그래서 나는 첫인상에 많은 걸 판가름해버린다. 심지어 얼마 전 '금사빠'라는 소리조차 들었다. 이번에 그런걸 인지한 채로 어떤 그룹의 사람들을 만났다. 열다섯명 남짓한 그 사람들은 한달 동안 만나본 결과 모두 알면 알수록 첫인상과는 달랐다. 작년의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우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해결되었다. 두 번의 경험 모두 그것의 선상 위였다고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좋아했던 선배는 내게 완벽한 존재였는데, 지금에서야 그의 균열  지점들이 보인다. 언제나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연애는 내 상상 속에서만 우상인 존재와의 연애였기에 현실의 나는 고통받았던 걸까. 당시의 해결은 지금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런 우상이라는 존재는, 내게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다. 처음 호감이 가더라도 금방, 몇 주 안에 그(들)에게 질려버리고 만다. 쉽게 마음이 가고 쉽게 그들을 재단해버린다. 어찌보면 그들에게 예의가 아닌. 그런데 애초에 나의 욕구는 왜 해결되어야 하는가? 그러니까 나는 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우상이 필요한가? 전혀 모르겠고 이런 상태에서 하는 연애는 분명 좋을리가 없다. 나는 여기에서 지금의 내가 연애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다. 다른 이들은 다른 데서 찾는걸까? 아니면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 그렇다면 나에 대한 고민을 이만큼이나 한 것일까?
거시적인 것에 대한 사고가 힘들다. 지난 4월에도 그랬다. 어제부터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의 우울은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몰아칠 때 나는 어떻게해야 시민이길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 애써 잊고 있던 것은 자꾸만 눈 앞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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