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자신이 연기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생각하게되는 배우는 어떤 상태일까. 무엇보다 슬플 것 같다. 그 연극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사실때문에. 집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상담을 통해 요즘 깨닫고 있는건 꽤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나는 가족을 가족놀이, 역할극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필요한 말만 내뱉고 부모도 그러고있다고 생각했다. 역할극이란게 너무 티나는 역할극은 망한 역할극이다. 내 가족은 다들 망한 역할극을 수행했다. 열심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면 그 역할극을 수행하는 배우인 어린 나는 무슨 상태였을까. 아마 초등학생 때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남이 들으면 화날만한 일에도 화나지 않아했다. 그냥 내 부모를 걱정했다. 그건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열셋 열넷 즈음부터는 현타가 오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더 이상 현타오지 않는 강도 높은 역할극을 하고싶어했다. 허접한 역할극이 아닌 정밀하기 때문에 역할극으로 보이지 않는 역할극, 관계맺기에 대한 열망이 점점 높아져만갔다. 서로 의존하지 않는 관계는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진짜'는 따로있다고, 내 주변은 대체로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번 소중하게 여긴 관계들을 놓치고 스스로 망쳤다. 의존하거나 의존하게 만드는 관계의 끝은 좋을 수가 없으니까.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인연들도 내가 조금만 더 들여다보았으면 아마 그들과도 꽤 의미있는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친구들이다.
관계맺기에, 의존하기에 그렇게 빠져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거기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는 점도. 빠져나오고 보니 싫어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더 이상 싫지 않다. 내가 그들을 싫어했던 것도 동시에 그들이 나로하여금 느꼈을 당혹감과 의존으로부터 오는 열등도 이해하게 됐다. 그렇게 건강한 관계를 매일같이 말했는데 막상 그 때는 그게 뭔지조차 몰랐다. 과거에 나와 이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과 다시 대화하고 싶다. 이제는 뭔지 좀 알 것 같다고. 아쉽게도 그들은 지금 곁에 없다.
내가 관계에 집착한다는 건 당연히 어느정도 알고 있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니까 그냥 생각이 빙빙 돌 뿐이었다. 근데 아마 그때도 의식적으로 가족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 그들은 무조건 나랑 관계없는 타인이어야 했으니까. 지금은 상담을 통해 그들(부모)에게 영향받았음을 인정한다.
전애인도 떠오른다. 내가 그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과도기에서 만난 사람이라 중간 즈음 나 스스로에게 현타가 왔다. 맨날 하던 방식으로 관계맺기를 그와 시도했으며, 동시에 더 이상 그런식으로 관계맺고싶지 않아했다. 어느순간 내가 '과거'로 남겨둔 것들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와 관련된 모든 것, 그 관계맺기, 전애인마저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얘기를 그나마 좀 나눴던 사람이 스무살 때 만났던 스물 다섯의 선배여서 자꾸 내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를 생각하게 된다. 내 스물 다섯은 특별하고 또 중요할 거라고 은연 중에 그렇게 항상 생각해왔다. 그냥 이제 좀 내 유년에 대해 거리두기를 할 수 있게된 것 같다. 내 서른은? 마흔은? 어떨까. 모르겠다. 배역에서 자꾸 튕겨져나오는 배우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든게 내 맘 같지 않은 상황에서 진짜인 나를 내보이면 쉽게 긁히고 상처받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진짜인 나는 언제쯤 등장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안다. 진짜는 따로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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