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상담으로 내가 뭘 그리워하는지 명료해졌다. 뭉게뭉게 알 수 없던 감정들을 고구마 줄기처럼 파헤쳐내는 시간이었다. 너무나 피곤하다.
- 어렸을 때부터 어른을 믿지 못했다. 특히 엄마를. 지금도 남을, 나를 좋아하는 타인을 잘 믿지 못하고 끝없이 의심하고 믿지 못한다. 확인받고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래서일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대상을 찾고 있었나보다.
- 그래서 전남친은 보호자였다.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더이상 연인이 아니라고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끝나다니, 배신이라고 느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에서 그는 나에게 피였다. 그가 나에 있어선 가족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남편은 아니었고 그게 문제였다.
- 결국엔 끝내야 하는 관계였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방식'의 관계를 아마 이야기하는 거였겠지. 하지만 그와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맺는 것 역시 상상하기 힘들다.
- 내가 원하는건, 그리워하는건 무조건적이고 편안하게 사랑받는 그 느낌이었다. 마치 할머니 무릎에 누워있는 것처럼. 어린 내가 원한다면 어른인 내가 나에게 해줘야하는 것들이다. 전남친이 내게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를 누군가 내게 비춰준다면 그것 역시 나 스스로일 것이다.
- 서른의 내가 열다섯살에 듣던 밴드의 콘서트에 가게 될 줄 그때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랬던 시절이니까. 지금의 나는 여전히 볼품없고 너무나 미숙하지만 그래도 한 사람 어른의 몫을 다하려 노력한다.
- 어떻게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을까. 여전히 미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