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오래 떠나있다가 돌아올 때마다 지난날들이 어느정도 정리되는 느낌이다. 더 정확하게는 거기서 살았던 시간들이.
그 공간에 얽힌 기억들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그런 걸까. 내가 지금 반 년 넘게 타지의 또다른 집에서 머물고 있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당장 돌아갈 수 있는 집, 본가가 있고. 아마 여행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머무름이. 삶이 여행이라는게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건 아마도 긴 여행을 해 본 사람만이 아는 감각일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문득 추위에 벌벌 떨며 씻다가 어릴적 원망했던 인연들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남의 이야기들과 비교해봐도 그냥 흔한 보통의 어렸던 관계들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으니 쌓이고 쌓여 원망이 깊어졌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생각해보면 연애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흔한 양상인 것을.
그리고 이런 생각이 가능하게 느껴지는 건, 그러니까 그동안 불가능했던 건 아마도 지금의 내가 지난날의 나를 다른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도 하고 사람이 변한다고도 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에 대한 나의 인식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삶이 너무 불안해서 이제는 정말로 안정을 바란다고 20대 중반에 들어서며 생각했는데, 어쩌면 요즘은 내가 바라는 건 그 불안 자체를 가능성으로 바꾸는 성정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젊은날에 안정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한편 아마 내가 바라는 안정은 그저 내 부족함에 대한 이상적 해결안일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나 관념적이고 절대적인 것이어서 그런 것은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절대적이고 완벽한 안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일들이 너무나 억울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게 보통의 성장과정이었다고 이제는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그 시간들을 통해 3에서 4만큼 자랐으면 나는 이제 5쯤 와있는 것이다, 4를 벗어나.
나의 절대 변하지 않는 부분들은 나 스스로도 알고 있다.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기도 하다. 아마 내가 상담을 받기도 하는, 혼자 답을 찾지 못하는 부분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변해가고 있음에 다시금 변하는 지난날의 나에 대한 정의는 스스로 계속해서 답을 찾아야한다. 나는 아직도 어떤 과거의 관계들에 집착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젠 단순 호기심인지 그 관계를 통해 뭘 하고싶은지, 그저 추억팔이인지. 미성숙해서 아름답고 아쉬웠던 날들에 대한 추억팔이의 땔감이지 않은지. 그냥 다시 그런 소중하고 어설픈 관계들을 맺어보고 싶은건 아닌지.
사실은 어설픈 걸 사랑하면서도 왜 기를 쓰고 다 아는 것처럼 구는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다. 날것은 부담스럽지만 자꾸만 백번천번 검열을 거쳐 나온 나의 모든 것이 싫다. 그나마 글을 쓰는 행위가 가장 즉흥적이고 나의 감정들에 가깝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나도 나에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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