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말이지만 그날따라 달이 유독 불길하게 느껴졌다. 지난 주말에 애인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웨딩스냅을 찍고 애인과 둘이, 가끔 엄마까지 셋이 시간을 보냈다. 다행스럽게도 날이 너무 좋았던 만큼 오랜만에 달을 봤고 초승달이 참 불길도 하다고 생각했다. 셋이서 예멘난민이 운영하는 집에서 저녁을 먹고 9시 10시쯤 일찍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깨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하니 이태원에서 인명사고가 났다고 난리였다. 이게 다 무슨일인가 싶었다. 애인은 전날 운전으로 피곤한지 엄마랑 내가 아침을 다 준비했을 때쯤 일어났다. 애인도 사고 뉴스에 놀라고, 엄마도 식탁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8년 전 생각이 많이 난다. 그런데 또 떠올려보면 그때의 기억이 없다. 떠오르는 장면은 딱 3개다. 중간고사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강의실에서 뉴스 속보를 봤던 것, 학교 정문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느라 고생했던 것, 몸과 마음이 지쳐서 전부 그만두고 여름방학에 독일로 혼자 여행갔던 것. 그 때에는 나를 전혀 챙기지 못했었고 그저 상황에 끌려가느라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동료들 속에서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당시 나는 뉴스를 최대한 안 봤고 뭘 해야 할지도 무엇 하나에도 결심조차 서지 못했다.
옛날 글들이 보기 민망함에도 남겨두는건 스스로의 기억을 위해서인데, 마침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당시 글들을 다시 보니 그때 나는 엄청나게 혼란스러워했음을 알 수 있었다. 8년 전과의 차이점이라면 지금 나는 그때보다 나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믿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끊임없이 실패해서 지금의 당신이 있을 수 있다는 어제 본 영화(양자경의 멀티버스) 속 대사처럼 끊임없는 나에 대한 의심이 내가 나를 좀 더 믿을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사실 정신과 약물치료와 상담을 가장 많이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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