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루폴의 드랙레이스를 재밌게 보고있다. 아는 사람이 드랙 단체를 만든 것도 있고,그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해서 얼마 전 프라이드페어에서 그 단체 주최로 드랙퀸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거기서 시즌8의 한국계 미국인 Kimchi의 굿즈가 잇어서 하나 삿는데 그날 뒤풀인지 아님 걍 이태원 클럽인지에 왔다고도 함ㅋㅋ
여튼 시즌8 보다가 갑자기 차츠키가 떠올라서 시즌7을 보고있는데 넘 재밌곸ㅋㅋㅋㅋ얼빠인 나는 넘 만족스럽다 아웃드랙의 펄 넘 기여움ㅋㅋㅋ둘 말고도 페임이나 카티야 트릭시 맥스 등등 보는재미가 정말 만점임
처음에는 드랙이 트랜스젠더 컬쳐인줄 알았는데 게이컬쳐였고 드랙레이스에서도 트랜스젠더 서너명 빼고는 전부 게이라고 한다. 그게 여성성을 연기하는 거라 트랜스여성은 연기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 같음. 그래서 게이남성의 드랙과 시스여성이나 트랜스여성의 드랙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계속해서 그런 의문이 들었다. (시스)여성의 드랙퀸은 대체 몰가..하는. 왜냐면 첨에 말한 저 단체가 그런 단체기이 땜에. 뭐랄까 게이남성의 드랙퀸은 바로 와닿는? 이해할 수 있는? 그런게 있다. 남성성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여성성은 억압되고 그게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이유가 되기 때문에 드랙퀸은 하나의 탈출구다. 드랙레이스 참가자 트릭시의 경우에도 청소년 시기에 조금이라도 '여성적'인 행동이나 말을 하면 양아버지에게 '트릭시'라고 불리며 학대를 당했고, 그걸 아예 드랙페르소나로 만들어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게 아마 지금 통용되고있는 드랙의 일반적인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드랙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종의 치유적 행위라고도 생각한다.(+ 그치만 그런 치유적인 것과 별개로 performer, artist로서 드랙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다수 존재하고, 드랙레이스 같은 곳에서는 우승도 한다. 특히 바이올렛 차츠키...ㅋㅋㅋ)
근데 이거는 아마 실제적 층위에서의 드랙 분석인 것 같다. 현실의 드랙은 하나의 쇼이고, 치유일 수 있으며 그저 서브컬쳐다. 그리고 문화는 언제나 의도하지 않지만 확장하는 의미를 가지고 그건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에 달렸다. 게이서브컬쳐지만 드랙을 '여성성'을 조롱하고 패러디하고 젠더범주를 넘나드는 실험으로 받아들이고 행하는 사람들의 드랙은 앞서 말한 경우와는 다를 것이다. 드랙은 단일한 하나가 아니다. 드랙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실험이다.
드랙에 대해서 한참 헤매다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었던 것 80년대 후반 뉴욕 할렘의 lgbt 문화를 담은 다큐 'Paris is burning'을 본 덕분이다. 여기서도 대부분의 드랙은 흑인게이남성이 수행한다. 뭐랄까 내가 기존에 생각하던 '여성성'을 수행하는 드랙 뿐만이 아니라 인종이나 계급 역시 수행하는 걸 보고 드랙을 협소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
여러모로 유익한 다큐였는데 80년대 후반 정점을 찍었던 ball을 중심으로 한 문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또 vouging의 오리지널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사용되는 용어들도 많이 등장해서 아 그게 그거구나싶고ㅋㅋ아마 지금의 드랙 컬쳐는 저 시대의 전통을 잇는 것 같음. 그리고 다큐가 나온게 91년도인데 당시에 주요하게 반응한 학자가 훅스랑 버틀러란게 되게 상징적인 것 같음. 글곸ㅋㅋㅋ훅스는 Is Paris burning을 쓰고 버틀러는 Gender is burning을 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리는 불타고 있다>는 일정한 전복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전복을 원점으로 되돌려서 복종시키는 기제에 굴복 당하기도 한다. 전복과 굴복, 이 양자가 불안정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버틀러의 해석이다." 이런 글을 봤는데 내가 생각하는 드랙이랑 비슷한 것 같다. 이제 셰익스피어에서 유래했다는 드랙의 역사를 좀 자세히 알고싶다. 이제는 좀 맥락을 알 수 있을 것 같음ㅋㅋ 그러고보면 패싱도 그렇고 미국에서 발전한 퀴어 이론은 흑인문화에 많은 기원을 두고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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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난 지금은 또 의견이 좀 다른 것 같다. 드랙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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