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게시판에 글을 다 쓰고 작성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알았다.
거의 똑같은 내용과 형식의 글을 몇 달 전에도 올렸던 적이 있다. 진심어린 댓글의 주인공에게 왠지 미안해져서 삭제버튼을 눌렀다. 아직도 이러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사람들이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고 할 때 나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비소설을 주로 읽고 문학을 읽어도 고전만 읽었으니까. 그런데
우습게도 생각해보니 인터넷 소설도 로맨스는 로맨스였다. 그리고 비소설을 읽기 훨씬 전부터 읽어왔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연애를 하면서 사람들이 로맨스 소설을 읽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연애는, 아직 고작 한 번 뿐이었지만, 그리 유쾌하지도
않았고 짧은 시간이었기에 내 경험에 비추어 볼 수 없다. 분명 처음엔 나도 무척이나 행복했을텐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연애가 끝난 후 내 실패한 첫사랑이 다시 마음 속 전부를 차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ㅡ주목할 것은 '전부'라는 것이다. 연애할
때에도 가끔 생각났고 그 마음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ㅡ 나는 다시 미친듯이 로맨스 소설을 읽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쪽 소설이
그러하듯이, 느껴지는 외로움과 공허감에 도취되어 마음이 아프다. 나름대로 첫사랑을 잊기 위해 읽기 시작한 것이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아직도 그 압도적인 정신적 지배의 아래에 놓여있었다.
'첫 연애상대'인 그에게 이렇게나 깔끔하게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미안 할 정도다. 그리고 '첫사랑'인 그
아이에게는 아직도 집착하는 내가 부끄럽다. 말이 좋아 첫사랑이지 학교에 가면 끊임없이 부딪혀야하고 그때마다 불편해 미칠 것 같다.
들켜버린 감정 앞에서 고개를 똑바로 들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처럼 내 감정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관심을 달라며 아우성치는 아는 동생 녀석도, 어쩐지
최근 멀어져버린 친구의 속마음에도 신경 쓸 겨를이 남아있지 않다. 내 감정 추스르기도 감당이 안 된다.
그때도 지금도 답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매일같이 그 애 생각이나 하면서 방황할 뿐이다. 가끔 그 애의
트위터를 가보기도 하는데, 성격상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그 애가 쓴 글을 읽었어야 하지만 역시 감정이 내 눈을 가려버렸다. 나
없는 그 애의 일상 앞에서 숨도 쉬기 어려웠다.
추한 모습밖에 남아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되도록 멀끔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예전에 친구였던 그들과 마주칠때는
표정도 더 밝은 척 하면서 걸었다. 동시에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갔던 것일까. 더 이상의 기력도 없다.
내년 운세에 사랑운이 극한에 치닫는댔다. 지금보다 뭐가 더 어떻게 된다는 건지. 한 때 그 애를 통해 기적과 비슷한 것을 경험했고
또한 곧바로 현실은 어디까지나 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실, 기적의 정체는 단지 내가 몰랐던 비밀스런 이야기들일
뿐이었다.
이번 여름에 갑작스럽게 첫 연애를 하게 된 것은 나를 증명해보이기 위함이었다. 첫번째로 나에게, 두번째로 그 아이에게. 물론 그
아이는 내가 연애를 했는지 안 했는지 관심도 없고 모를 테지만,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렀다. 그런데 어쩐지 실패한
기분이다. 두번째 증명을 위해서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할지도 모르겠다.
그 애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불안했다. 어쩐지 모르게 불안했던 그 느낌은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바뀌었고 결국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모든 게 부서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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