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4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위로받을 수 있는 건 꾸준함인 것 같다. 무언가 작은거라도 인내심을 갖고 장기간 해냈을 때, 그래 남는게 있네 하고 꽤 뿌듯하다. 근데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계획해도 조금 하다가 일쑤이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꾸준하게 한 무언가는 고등학생 때 3년 내내 일주일 동안 한 편씩 독후감을 썼던 것이다. 가끔 밀려쓰기도 했지만 그렇게 글을 썼던 행위는 아직도 내게 물리적인 무언가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의 후견인이 되어주겠노라고 말한 선생님이 내게 독일에 가면 하루에 기사 하나씩 해석해보는걸 제안했을 때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아무 기사나, 내용이 어떻든 간에 '무언가 한다'는 행위는 위로가 된다.
하루 한 편씩 일기를 적어볼까도 생각 중이다. 그러면 적어도 뭔가 기록이 남아 나중에 아 이랬구나 하고 나중의 그 시간을 위로할 수도 있고, 또한 불안이든 걱정이든 기대든 감정을 언어화 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말을 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첨에는 종이에 손으로 적어볼까 했지만 손이 너무 힘들 것 같고, 이 블로그도 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든 걸 말하면서 또 아카이빙 되는 유일한 온라인 장소이기에 걍 여기다 적기로. 트위터나 페북 같은 sns의 아카이빙 기능이 새삼 불편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트위터는 심지어 삼천트윗이엇나 그 이후로 갯수 넘어가면 불러오기도 안 됨...

11시간의 비행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분명 불과 2년 전인, 아니 3년 전인가 암튼 2017년 여름의 비행은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그때보다 역시 존버력..이 더 생긴 것일까. 아마 작년에 하루종일 독일어학원과 미술학원에 앉아있어서 적응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2시 반쯤 도착했는데 수하물 찾는 비행편이 아시아나랑 다른 항공사 이렇게 두 개밖에 없어서 당황했다. 사람들도 적고.. 아니 프랑크푸르트 공항 망한 것일까? 유럽놈들은 다 기차타고 다니나?? 주말이면 더 사람 많아야 하는거 아닌지.. 그리고 너무 더운데 짐은 또 많아서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안그래도 가뜩이나 양손 가득 캐리어에 백팩에 에코백에 아빠가 준 작은 몸가방에 정말 짐으로 몸을 둘렀는데 더워서 패딩까지 입을 수 없고 손으로 들고 다녀야하다니.. 겨우겨우 호텔을 찾아가 땀으로 젖은 옷들을 벗어내고 씻어서 너무 좋았다. 만약 당일에 호텔에 묵지 않고 바로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갔으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멘탈도 같이 붕괴됐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호텔에서 몸을 쉬이는 동안에도 슬픔이 찾아왔기땜애...
그래도 오늘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는 좀 괜찮은 것 같다. 1년 뒤를 그리고 그보다 더 뒤를 생각하면 존나 막막하고 불안에 압도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당장의 생활만을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너무 뒤를 생각하지 말아야한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이롭다... 마치 대학생 1학년 때의 나처럼, 졸업하고 뭐할거냐는 질문에 생각해본 적 없다는 대답을 했던 것처럼. 그때는 정말 그 당시의 생활이 즐거워서 나중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걱정도 안 됐다. 지금 눈 앞의 상황에 집중한다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상담 마지막 시간에 상담쌤이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을 추천해줘서 비행기에서 좀 읽었는데 읽으면서 자꾸 상담사쌤이 생각나서 눈물이 나왔다. 그 책에 쓰여져 있는 말들이 여태 상담사쌤이 하는 말들과 되게 비슷했기 때문이다. 쓰면서 또 눈물이 나온다. 상담사쌤 생각하면 왤케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정말 고마워서 그런건지 아직 스스로 상담 받았던 시간들에 대한 정리가 안 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패딩 진짜 괜히 가져왔다 독일은 겨울에 원래 이렇게 따뜻한건지 아님 2월 말이라서 벌써 봄가을 날씨가 된 것인지. 포폴을 택배로 부치기로해서 빨리 받고싶은데 또 방구하기전에 받으면 짐이 어마무시하게 많아지니까 천천히 받을까 싶다. 그치만 같이 보내기로 한 여름옷.. 반팔.. 지금 필요할지도..


시차적응이 아직 안 되서 어제 저녁 8시에 잠들고 아침 5시 반에 일어났다. 한국시간으로 따지면 새벽 4시에 잠들고 낮 1시 반에 일어난 것. 그치만 시차적응 안 된 쪽의 생활이 훨씬 건강한 것 같다. 아침 먹기 전에 욕조에 몸 담그는 것도 좋았고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하는 것도 좋았다. 얼마나 이 아침형 인간의 생활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이렇게 살고싶다. 아침에 여유로운거 넘 좋다 신문기사도 아침에 읽어버리자...
몰랐는데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기차 환승할 때 놓칠 뻔 했다. 어련히 환승시간 20분이라고 생각했는데 10분이었고 내가 생각보다 짐 때문에 늦게 이동했던 것. 정말 다행히 2분 남겨놓고 기차에 탔다. 아니었으면... 생각하고싶지않닼.... 기차 안에서 또 더워지고 짐때문에 또 힘들고 놓칠 뻔 했다니 당황하고 자리도 어디있는지 몰겠어서 첨에 힘들었는데 직원덕분에 자리에 무사히 앉게되었다. 내 핸드폰으로 예약된 좌석을 물어보는데 그걸 잡은 직원의 빨간색 매니큐어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냥 빨간색 매니큐어가 아닌 손톱마다 다르게, 이쁘게 꾸며져있는 빨간색 네일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독일에 와서 안도감을 느꼈다. 나를 그저 외부인으로 보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안도감. 공항에서는 모든게 낯선 분위기라서 좀 힘들었고, 아침 식사 때 아시안 직원에게 백인이 땡큐라고 하고 직원이 당케쇈이라고 하는 거에 심란했었는데. 사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성 분이 나에게 독일어로 저쪽에 앉을 자리 있다고 얘기해줬을 때도 좀 기분이 괜찮았지만. 그리고 자리를 찾아준 직원도 어쩌다보니 무지캐 폰케를 한 내게서도 어떤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지 괜한 망상을 또 하고 있지만. 암튼..

간신히 찾아 앉은 자리는 Ruhebereich가 먼지 나에게 알려줬고.. 추웠다... 그냥 일반 좌석 말고 복도의 유리창으로 좀 격리되어있는 5좌석짜리 여기가 Ruhebereich였구나...ㅎ 기차가 지금 좀 추운데 웃긴게 에어컨땜에 추운 것 같다. 날씨가 넘 따듯해서 에어컨을 트는 것인가요.. 추워서 옆자리 사람 다른데로 도망감... 사실 호텔도 기본으로 난방이 설정되어있지 않았고 그냥 자는 바람에 매우 추웠다. 이틀 동안 가장 추웠던 곳이 새벽의 호텔방이었다. 그래서 잠에서 깨서 부랴부랴 캐리어에서 전기매트를 꺼내서 틀고 잤다. 짐으로 부칠까하다가 들고왔는데 들고 오길 정말 잘했다. 분명 베를린의 숙소도 새벽에 꽤 추울 것 같다. 고양이가 없으면 잘 잘 것 같았는데 새벽에 깨는게 습관이 되었는지 한 4번은 깬 것 같다. 추워서도 깼지만 화장실 가고싶어서도 깨고. 뭔가 정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수면습관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새로운 곳에 적응이 덜 되고 피곤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깨지 않는 숙면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야옹이와의 이별은 여전히, 그리고 지금으로서 가장 슬프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가 원래 야옹이가 너보다 짧게 사는걸 알고 있지 않냐고, 그저 그 이별을 더 정들기 전에 빨리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나는 정말로 내 삶에 동물을 들일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날 가장 가까이에 생겨버렸고, 야옹이가 그랬듯이 나 역시 야옹이에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다시 내가 부모를 떠나듯 야옹이를 떠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야옹이가 나 없는 집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있을지 생각하면 분명 괴롭다. 그러니 그런 일은 하면 안 된다. 그냥 전전두피질()이 발전하지 않은 고양이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어떤 생각은 그냥 생각하는 행위 만으로도 괴롭고 그렇기에 하지 않아야한다. 먼 미래를 상상하지 않고 지금 눈앞의 상황을 생각하듯이 멀리 떨어져있는 야옹이를 생각하면 마음만 아프다. 분명 잘 지낼 것이다. 벌써 낮 12시가 됐고 앞에 앉은 독일인 아빠와 아들이 먼가 맛있는 걸 먹는 것 같다. 배가 고프다. 어제 샀다가 맛없어서 남긴 샌드위치를 나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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