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에게 반영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절주절의 글.
이사가 코앞이다. 사실 벌써 반 정도 이사했다. 가구들이 오기 전 인간과 고양이가 먼저 입주했다. 반 정도는 여전히 밖에서 살던 고양이와 함께 아파트로 이사가는 거라 적응할 지 걱정도 많이 됐고 죄책감도 여전하다. 그래서 이사가 결정 되었던 한 달도 더 전부터 미리 스트레스받고 답 없는 고민을 끝없이 했던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일임에도 여전히 망설여진다는 건. 그래도 저질러버렸고 이제는 고양이와 이 집에서 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 밖에 없다. 지난 토요일에 함께 왔으니 벌써 이삼일 째인데 첫 날은 스트레스 때문에 입으로 숨쉬더니 오늘은 내 이불에도 꾹꾹이하고 많이 괜찮아진 것 같다. 고양이도 더 이상 안과 밖을 드나들며 영역을 지켜야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것이기를, 부디 그게 내 상상 속 만족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것이기를 바란다. 지금 앞에 누워서 꼬리로 장난치는 고양이를 보니 너무 사랑스럽다. 엉엉 인간이 미안해..
요 며칠 로맨스, 로맨틱에 대해 자기 전에 항상 생각하고 있다. 아주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내 전반적인 관계맺기에 대해 고찰 중이다. 지난 번에도 한 번 블로그에 썼듯이 나는 동시대의 연애라는 역할놀이에 몰입하기를 점점 실패하고 있어서, 사실 절반은 의식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건 의식하면 끝나는 일이기에, 좀 더 본질의 로맨틱한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고 그렇다면 역시 나 또한 아직 사회적 연애라는 규칙에 물들기 전의 시절을 되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문장이 엉망진창인데 정리가 안 된다. 암튼 첫 번째 지점으로, 17살 때의 그 일을 떠올려본다. 왜냐면 나는 여지껏 그때를 기점으로 친구를 사귀는 방식을 바꿔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여전히 모호했다. 그냥 인간한테 실망을 해서 그렇게 된 건가?: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더 자세히 사고해볼 수 있다. 신기한 일이다. 전까지는 이런 방식으로 그 일에 대해 얘기해 볼 생각을 못했었는데. 암튼 뭐냐면, 이건 그간 해온 생각의 정리이기도 한데,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아직 몇 등신 안 되는 어린이일 때부터 친한 (동성)친구 한 명을 점찍어서 붙어다녔다. 나는 그 친구의 '첫 번째' 친구이길 원했다. 웃긴 건 어린이집에서, 학교 같은 반 안에서로 그 영역을 나도 모르게 지정했다는 점이다. 모든 친구에게 강한? 소유의 감정을 지녔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몇 몇 떠오르는 얼굴들이 꽤 있다. 전부 학년이 지나면 금방 잊혀지고 나는 새로운 반 친구를 찾아 떠났지만.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좋았으면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뀌어도 여전히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것 아닌가? 단순히 미숙해서 그랬던 걸까? 아무튼 정말로 어렸으니까, 그렇게 말고는 표현할 말이 없다. 그러다가 중고등학교 올라가고 점점 머리가 크면서 미숙했던 나의 친구맺기에도 변화가 생기고 학년이 바뀌고나서도 친구로 지내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급해도 여전히 연락하며 친하게 지냈던 게 A였고. 집에 가는 방향이 같다는 이유가 젤 컸겠지만, 잘 맞는 구석도 있었고 나한테는 그 친구가 차지하는 부분이 컸었다. 그리고 A의 친구인 B를 만나게 됐고 나는 B와 정말 잘 맞다고 생각했었다. 주변 친구들도, 심지어 B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엄청난 소유욕의 감정이 생겨났었다. 아예 그 인간을 나한테 종속시키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 날, 내가 말실수를 하고 관계가 어긋나게 된 날, B가 나한테 A의 집에 놀러간다고 했었을 때 나는 아마 내심 되게 절박했을 것이다. 나는 A의 집도 B의 집도 안 가봤는데, 둘은 벌써 이미 여러번 놀러갔던 것 같았다. 둘 모두에게 질투했던 것 같다. A랑 꽤 둘도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고 깨달았고, B와의 관계에서는 조급했다. 서로 알게 된 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도. 그래서 나는 그게 아직 뭔지도 모를 감정이었는데 감정을 되돌아보기는 커녕 성급하게 결정내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기억난다. 나한테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게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거냐고 인터넷에 글을 썼다. 댓글에는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아하는 거라고 했다. 나는 B한테 키스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좋아한다는 표현 말고는 그 강한 소유욕을 설명할 길이 없어서 스스로에게 그냥 나는 B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A와 B, 그리고 주변 친구들은 내가 B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뭐 새로운 이야기도 아닌데 왜 맨날 하던 얘기를 또 쓰냐고 하냐면, 그러니까 나는 이게 B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에는 B가 내 인생에서 그 이전과 달리 B가 새롭게 내 인생에 나타난 특별한 트라우마 비슷한거고, 첫사랑이고, 그 이후로 내가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이전의 친구맺기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나는 B한테 키스하고 싶지 않았고, 그 이전의 친구들에게도 비슷한 소유의 감정을 느꼈었다. 그러면, 그렇다면 나는 그 친구들을 전부 연애대상으로서 좋아하게 되는 건가? 아니면 반대로 B를 좋아했던게 그저 친구로서 좋아하게 되는건가?
둘 다 아니다. B 이후로 내가 바뀐 건 맞다. 이전에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안 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평가했었는데, 그보다는 그와 같은 1:1의 연인과도 비슷한 친구맺기를 관뒀다. 내가 상대에게 하나뿐인 인간이기를 바라는 기대와 노력을 접었다. 그래서 조금 더 넓은 인간관계를 맺게 되긴 했다. 삶은 어쩐지 조금 심심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냥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스무살 때 만난 선배언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사람에게 나는 자신의 실패를 바라볼 때와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특별하다. 나는 지금이라도 그 사람이 한 마디만 하면 그 사람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나에게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겠지만. 하지만 이것 역시 로맨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거야 말로 동경에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요즘은 로맨틱과 섹슈얼도 그다지 믿을만한 범주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키스하고 싶다는 게 대체 뭔가..? 그 사람과 특별해질 수 있다면 당연히 섹슈얼한 일들도 마다하지 않는 것 아닌가? 애초에 섹슈얼은 로맨틱의 연장선 아닌가? 써놓고 보니 그게 구분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다른 한 인간과 맺는 관계가 감정이 그렇게 딱딱 구분될리가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두 번째 지점에 대해 짚어보자면, 요즘 깨닫게 된 일인데 나는 상대방이 좋으면 상대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직접 나도 해보고 싶어진다. 어떤 영화가 좋다면 그 영화를, 소설이 좋다면 소설을, 음악이 좋다면 음악을 찾아 듣는다. 그렇게 해서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그렇게해서 좀 더 상대를 알아가고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즐겁다. 이건 근데 좋아하는 친구에게도 (어쩌면)로맨틱 대상에게도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저 '좋아하는 친구'라고 느꼈던 게 사실은 내가 로맨틱한 감정을 느꼈던 걸까?하는 것이다. 여태껏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면 그때는 어려서 거기까지 감정이 발달하지 않았지만 그게 처음 발현됐던게 B였다면..? 근데 B와의 관계가 철저한 실패로 돌아간 후 그 이후에 그런 '좋아하는 친구'의 영역을 남겨놓지 않았기에 여태 미지의 영역인 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라면?
그러니까 난 정말로 B를 좋아하던 시절에 첫사랑을 겪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낭만적인 이름짓기가 아니라, 내가 정말로 그런 감정의 발달을 겪었던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실패한 그 감정의 조각들을 묻어둔 채 여지껏 그게 어떤 상태인지도 몰랐던 거고. 그 이전과 이후의 차이도 몰랐던 것이다. 또, 헷갈릴법했던게, 친구라는 이름 하에 그냥 그런 질투나 소유욕 집착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남자애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얼빠였다.(..) 사귀지는 못했지만 아마 사겼다면 그 이후의 연애들처럼 얼마 못 갔을 것이다. 상상과 현실의 괴리가 나를 견디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반면 동성친구들에 대해서는 그만큼 강한 소유욕을 갖고 있었고, 또한 그건 로맨틱으로 발아하기 전의 어떤 씨앗 같은 상태였겠지.
그렇다면 자꾸만 역할놀이에 실패하는 내가 연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아하는 친구'를 찾아서 그의 취향의 모든 것들을 행하면서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의 유일한 위치가 되기 위해 섹슈얼한 행위들을 해나가며 로맨틱적 만족감을 채우는 것이겠지. 물론 이는 높은 확률로 동성에 한 할 것이다. 이전까지의 경험을 유추해보면 100퍼센트 그렇다... 아 한 명 제외하고. 뭐 이젠 더 이상 친구라고 부르기도 힘들지만, '연인'보다는 유일무이한 '친구'가 되는게 더 좋았던 남자애가 한 명 있었다. 가끔 남들에게 말 못할 고민이 생기면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소중한 건 금방 사라지는게 우주의 법칙이 맞긴 한가보다.
중학생 때부터 막연하게 걍 바이라고 생각하면서 섹슈얼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납득할만한 설명을 못 했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때, 17살에 스스로 어떤 가능성을 묻어버려서 여전히 애매모호한 상태였던 거다. 어쩐 일인지 이제와서 좀 알 것 같다. 드디어 감정이 정리도 되는 기분이다. 이유는 오랜만에 '좋아하는 친구'를 발견해서 그럴 것이다. 어른에게 '오랜만'이란 표현은 정말 몇 년 만이란 점이 눈물겹다. ㅎㅎ...
그 친구,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 친구와의 관계를 혼자 몰래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러면서 초등학생 때 친구가 좋아하던 소설이나 만화를 열심히 봤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 친구가 멋있고 좋아서 걔가 좋아하는 모든걸 나도 같이 했다. 지금은 비록 쌍방은 아니지만 반쪽짜리 친구가 되어 외로운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냥 이런 일들이, 이런 감정이 오랜만이라 반갑기도하고 또 읽어나가는게 순수하게 재밌기도 하다. 그러게, 학교 다닐 땐 친구들끼리 소설을 돌려봤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하고... 음...... 어른이 되면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 한 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혼자 이렇게 설레발치면서 뭔지도 모를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데, 내 스스로가 너무 보잘 것 없이 별로이고 또 막상 만나면 상상했던 것과 달라서 실망 할까봐. 근데 아마 못 만나겠지.. 어떠한 관계도 혼자만의 노력과 관심으로는 성사되지 않는다. 그래서 금방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고.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 가능성은 스스로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 뿐인데 방향성 자체를 모르겠다. 나는 어떤 인간인지, 어떤인간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관계 속에서 지향점이라도 있었는데 커갈수록 그런 것들도 전부 내게서 떨어져나가고,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할 지 모르겠다. 어떤 것들이 나를 재밌고 흥미로운 인간으로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냥 나는 이제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마저 지쳐버린 인간인 것 같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내가 80살 노인이 되서 20대를 돌아봤을 때의 느낌으로 살고싶다고.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후회하지 않는 만족스러운 삶은 분명 나 스스로에게서 올텐데 어떻게해야 그걸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생 살기에도 답지가 있으면 좋을텐데, 근데 그 답지도 분명 뒤쪽에 있을테니 커닝하지 않고는 여전히 모를테다.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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