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7

런던써킷은 마음에 묻어두고

그날 밤 찬바람을 맞으며 함께 헤매다 발견한 토끼와 이름 모를 새들도, 노량진 맥도날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먼 이국 땅의 맥도날드에서 본 복고풍의 학생들도, 닫혀진 밤거리를 떠도는 젊은이들을 유일하게 맞이해주는 ‘런던 써킷’에 자리한 조그마한 클럽도, 너의 오늘 밤은 잊을 수 없겠다던 싸구려 같은 감상도, 다음날 늦은 밤 잠시나마 내 품에 안기던 너의 체온도, 그 다음날 아침 네가 내 꿈에 나왔다하니 정말로 웃고야 말았던 너의 얼굴도 그저 모두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너의 그 감상과 구분할 수 없이 초라해질까봐 두렵다. 그럼에도 사실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어. 네가 아무리 나한테 못되게 굴었어도 나는 그때 모든게 진심이었고 좋았던 기억마저 진짜였으니까, 내 기억마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 짦은 기간 내가 보았던 너는 사실 내가 보고 싶어했던 너였으니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은 나였으니 사실 더는 너를 탓하지 못할 것 같다. 네가 그랬듯이 나도 나만의 로맨틱을 찾고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실재하지 않는 또 다른 너를 내 안에서 만들어냈던거라고 이제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그렇게 그냥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려고, 그래도 여전히 좀 슬프다. 짧은 시간 내가 만든 환상을 넌 더 짧은 시간 안에 깨버렸지. 그 안에서 잠시 꿈 꿀 수 있을거라 기대했는데 너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지나간 꿈을 계속해서 뒤돌아보면 안 된다는걸 알면서도 인간은 금기를 참지 못하나봐. 난 정말 네가 좀 더 건전한 인간이 되어서 나에 대한 후회를 하기 바라. 그래서 일단은 너의 인간으로서의 치유를 기원한다. 좋은 사람이 될수록 네가 했던 쓰레기짓을 깨닫고 아쉬워하겠지. 아닌가, 이것도 다 꿈이고 집착인가. 내 인생에서 그 일주일은 뭐였을지 아직도 의미를 찾고 있어. 네가 고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저 못났을 뿐이었겠지. 그래도 너보다는 덜 못난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설사 그것 때문에 네가 도망쳤다하더라도,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특별히 너라서가 아니라 난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래서 후회는 없어, 그냥 남은 건 안타까움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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