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1

풍선

아빠가 죽고 엄마가 아빠 구남친을 만났을 때, 헤어진 후 (아마)최근 몇 년 간 아빠의 모습은 ‘바람빠진 풍선’ 같다고 했다고 한다. 아빠 핸드폰에 있던 어플의 메시지목록들이 생각난다. 


개중에는 나보다 한 두살 어린 태국인지 베트남 남자애도 있었다. 아마 아빠도 마음둘 곳 없이 방황하다 쉬운 길을 찾아봤지만 쉽지 않았겠지. 외로웠을 것 같다. 가족이 해결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혼자선 해결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냥 꼭 껴안아주고 싶다. 3년 전 아빠의 휴대폰을 봤을 땐 그저 혐오스러웠는데 지금은 이해가 간다. 나도 똑같은 인간이니까. 아빠가 보고싶다.

- 이틀 전 월요일에 걔를 차단했지만 여전히 많이 보고싶다. 친구 말대로 어쩌면 나는 ‘가질 수 없는 것’만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걔의 싸구려 작업멘트를 다시 듣고 싶다. 나한테 그런 싸구려 멘트들을 이야기한 사람은 걔가 처음이다. 걔랑 있으면 현실에서 벗어나 신기하고 재밌는 세계에 몰래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났다. 너무 보고싶고 좋아하고 얘기하고 싶은데 걔는 정작 나한테 관심 없고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나한테 위험이 될 수 있는 존재라 슬프다. 그래서 차단했다. 나한테 전화하는 상상을 매일 한다. 그런데 요즘 내 머릿속의 많은 상상들은 하나도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 오늘 체호프의 갈매기를 봤는데 니나는 자신을 버린 작가놈을 버려진 후에 더 좋아한다. 그것도 알 것 같다. 전보다 모든 로맨스 서사를 다층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아마 헤어질 결심도 지금 보면 절절한 로맨스로 이해하지 않을까.

- 대체제로 찾았던 사람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나는 그와 내가 안정적인 관계를 쌓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또 다른 대체제를 찾고 있다. 바람빠진 풍선은 나다. 마음 둘 곳이 없다는 말은 결국 외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웃긴건 그와중에 가장 자극적인 슬픔을 찾고 있다. 여러 슬픔과 안타까움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걔랑 더이상 만나지 못한다는걸 우선적으로 떠올리려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여전히 나를 아껴주는 전애인에게 위로받는다. 나는 자격미달이다.

- 아마 외롭고 우울한 것 같다. 사실 이 시기는 인생에서 특별히 힘든 시기가 맞긴 하다. 애써 잊어버리려하고 있지만 결혼식 4일 전 취소는 그런 것이다. 정신과쌤한테 요즘 넘 졸린데 증량해서 그런거냐고 물으니 항우울제는 반대 효과의 약이라고 한다. 아마 우울해서 졸린거라고 하셨다. 어떻게 이 늪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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