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7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게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누군가는 명상을 한다고도 하지만 오히려 더 생각으로 가득 차버리지 않을까? 안 해봐서 모르겠다. 런닝머신 위에서 30분씩 뛰는 것도 괜찮지만 그건 많은 조건들을 수반한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일단 어느정도 건강해야하는 모순이 있다.

사람은 누구다 다 예술가라는 말을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순간 그 사람이 정말로 예술가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10대의 나를 지배하던 정서는 외로움이었다. 뭘 하든 너무 외로웠던 것 같다. 그 때보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타지에서 혼자 지내는게 외로울만도 한데 딱히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게 신기하다. 아마 그 때의 나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너무나 오래된 감정이라 무뎌져서 그런 걸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로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아서 그런 걸수도 있다. 사실 후자라고 생각된다. 그 때도 사실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던 게 아니다. 오히려 친구들은 항상 주변에 있었는데 내가 나의 영역에 들어오는걸 거절했다. 항상 나는 나를 미성숙한 존재로 여기지만 그래도 그 때 보다는 어딘가 더 단단해져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아마, 이제와서 하는 자기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의 내가 원했던 대로 바로 혼자 유학을 갔으면 아마 못 버티고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외로운 사람은 어딜 가나 외롭다.

그러고보면 나는 나를 기다린 시간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유학 같은 건 자의반타의반이었지만, 내가 다 망쳐버릴거란걸 알고 피한 일들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인간관계에 해당하는 일들. 결과적으로 꽤 값진 일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어쩌면 지금의 내가 더 크기를 기다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를 믿는 것도, 그래서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도 나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하는 음악을 들었다. 그 사람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어떻게 그런 곳에 나올 수 있었을까 신기하다. 그 사람의 고통은 깊으면서도 그 상황을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단단함이 있어서 가능했던 걸까. 고통의 단단함 같은게 느껴졌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물으면-이미 그 상태가 '병적'인 거긴 하지만-타인이 뭐라하든 견딜 수 있는 지점이 생겨난다. 왜냐면 스스로가 이미 몇 번이고 했던 말들이기에.

혼잣말은 하지 않아도 혼자서 속으로 나와 가상의 인물은 항상 대화를 하고있다. 남들도 그런지 조금 궁금해졌다. 상황극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외국어로 하기도 한다. 있을 법한 상황을 생각하고 거기에 내가 타인이 되어 나에게 묻고 또 내가 답한다. -물론 나는 적정선을 지키는 인간이기에, 이 상황에 대해 더 생각하진 않는다. 잠깐 상상해봤다가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관뒀다. 호기심은 나를 지킬 수 있는 수준까지만이다.

요즘 생활이 조금 '무너졌다'. 이런 표현도 오랜만인 것 같다. 독일에서 맞는 두 번째 생리다. 첫 번째는 오고 거의 직후라서 주기도 안 맞고 평소처럼 생리통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주기도 맞고, 무엇보다 생리통이 없다. 요 몇 년간 항상 첫째날에는 약이 필수였는데 갑자기 생리통이 사라지다니,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암튼 환영한다. 한 일 주일 동안 계속 일이고 일정이고 다 꼬여서 고통받았는데 겨우 간신히 제자리에 돌아온 것 같다. 긴장이 풀리고 피곤하다. 오늘은 장을 보러 갔어야했는데, 괜히 또 일찍 일어나서 낮잠을 택했다. 남은 식빵 4조각으로 존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은 정말 필요한 것 같다. 잘 되지 않는다면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할 정도로. 그냥, 어떻게든 살아는 가니까, 밥 먹고 숨은 쉬어지니까. 그게 인생이니까 너무 구체적으로 절망하지 않기. 절망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흐릿하게 안도하는 법을 자꾸 기억해내야 한다.

엄마가 내 미래의 일에 대해 얘기하는 것들은 항상 너무 비현실적이라 거절했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게 나와 맞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되는 것, 사진 작가가 되는 것, 감독이 되는 것. 어쩌다보니 여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나는 정말로 평범을 바라고 현실을 바라는데 이젠 다 글러먹은 걸지도 모르겠다. 너무 멀리 가는 길의 첫 발을 내딛은 것 같다. 아니 사실은 애초에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평범을 바란다는 말은 뱉어놓고도 너무 위선이다. 아무튼 나는 현실을 잡고 싶다. 꿈은 ‘이루는’ 거면 현실은 ‘만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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