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6

오늘의 깨달음

낮에 할머니랑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하고 또 그 일로 엄마랑 삼십분 정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뭔가 깨달아버렸다. 할아버지 고집 때문에 할머니가 요 몇 년 힘들어하고있는데, 아니 사실은 평생일지도 모르지만, 최근 몇 년 상태가 더 안좋아져서 할머니를 더 괴롭히고 있다. 원래 지금쯤 시골집도 팔고 노인복지서비스도 받으러 다녀야하는데 할아버지가 다 거부 중. 전화를 받은 할머니는 7시가 넘었지만 입맛이 없는지 저녁도 안 먹고 불도 끄고 거실에 있었던 것 같다. 말도 평소와는 다르게 힘도 초점도 의욕도 없어보였다. 계속 이야기하다보니 금방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지만. 그리고 할머니가 갑자기 말벌에 쏘인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랐다. 한 이 년 전쯤의 이야기를 최근에 일어난 일처럼 얘기를 해서.
그렇게 걱정스레 통화를 끝마치고 엄마랑 또 오랜만에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텍스트로 이어지는 대화들 속에 그러고보니 예전에 내가 어릴 때 처음 메일을 사용하는 법을 익힐 때쯤 나에게 메일을 보내주기도 했었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가 형제들도 이제는 다 할아버지를 포기하고 할머니도 너무 불운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엄마도 할아버지때문에 지쳐보였다. 나보다 곱절의 세월을 살아온 나이든 가족들 생각을 하니까 뭐랄까 어느것 하나 제대로 된 삶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지금 '정상'의 상태를 벗어나서 이따위로 살고있는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럼에도 할머니한테 엄마와 내가 있지 않느냐고 했다. 지금의 나도 나인데, 어긋남의 상태라고 쭉 생각해왔나 보다, 그래서 의욕없이 '원래대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그런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삶'은 어디에도 없다. 자꾸만 남들은 다 그런 정상적인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혼자 비교하며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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