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열받는 날들
성질머리만 더 나빠지는 것 같다
그래도 6년치 밥 더 먹은 짬으로 존버에 승리했다 개새끼야
상담이 꽤 진전되고 있다. 평소에 급급해하다가 이렇게 잠시 공간을 갖고 깊은 안쪽을 되돌아 보는 게 가능한 시간들이 있는 것 같다.
거기에 그 상담 자체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정신과 진료도 다른 방면에서 나에게 동력을 주는 것 같다. 정신과쌤은 개인으로서 이런 시간이 쉽지는 않겠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심리 상담을 통해 마음에 닻을 내려 휩쓸리지 않게 되니 생소하도록 헛헛해졌다. 빈 공간에 무얼 채워야하는지 모르게되었다. 비어버렸다. 하루하루 어떤 의미를 채워야하는지, 무얼 만들어내야하는지 백짓장이 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습관적으로 일을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정신과쌤이 일중독이랬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뭘 하냐고 물으셨다. 가끔 영화를 본다고 답했다. 가끔 산책도.
지난 글이 21이었던 걸 보니 참 일주일 남짓한 시간 사이에 사이가 엄청 가까워졌구나 느꼈다
특히 어제는, 피곤해서 옆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 ‘그래도 저 나이도 어린데 막 엄청 열심히하고 기특하고 자기객관화 잘 되고 그러지 않아요?’라고 랩을해서 처음으로 너무 귀엽다고 생각해버렸다.ㅋㅋㅋㅋ 귀엽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서 딱히 대꾸를 못 했다. 나한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도 웃기고, 가끔씩 멋진 어른이 될 거라고 하는 것도 웃기고. 아마 네가 보기에 나는 어른인가보다.
오늘은 눈이 아프니 카톡은 서로 하지 말자고 약속하고 급한 건은 전화하라고 그랬었는데, 네가 먼저 전화한 것도 귀여웠다. 솔직히 급한 건도 아니었고 그냥 회의를 가장한 안부전화였잖아, 웃겨 정말. 네가 없는 답사는 힘들더라. 내일은 쉬어야겠다.
가끔씩, 아니 이제는 종종 킬킬대는 너의 특유의 개구진 웃음도 내 앞에서만 보이는 것 같아서 재밌다. 우리는 뭐가 될까, 10월의 폭풍이 지나가면 뭐가 남아있을까
- 지금보다 더 최선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더 나은 삶이야 있겠지만 더 최선일 수는 없을 것 같다. 망해가는 세상에서 한 명 몫의 이로움을 다하는 삶.
-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떼쓰면서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냐는 상담쌤의 질문에 '지쳐서 그만 울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냐'라 하니까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셨다. 그래 아마도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좌절과 체념의 단계를 겪었겠거니 싶다.
원하는 걸 얻지 못할 때 스스로 지쳐 떨어져나갈 때까지 감정의 한계로 밀어붙였는데, 그러지 말고 스스로를 달래봐야겠다. 말도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고.
- 좋아하는 것들이 역사가 되어서 좋다. 어떤 노래를 듣거나 영화를 보면 그 시기에 좋아했던 것들이 뿌리채 기억 위로 떠오른다.
- 이상하게 마음이 후련하고 조금 즐겁기까지 하다. 처음에는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A에게서 못 벗어나는 건가, 싶었지만 결국 내가 바라던 건 이거였나 싶다. 어쩌면 이럴 줄 알았다. 어쩌면 너는 또 지독하게도 나를 찾을 것 같았다. 두려움은 하루면 끝났고, 우리는 언젠가 또 보겠지. 어제부터 터질 것 같던 머리 속이 잠깐의 대화로 해결되었다.
- 오히려 작년 그 친구를 다시 만났던 열흘 간이 마음이 더 불편했다. 즐거운 기억만 남아있어서 몰랐는데, 우리 생각보다 안 맞았구나. 어쩌면 그 1년 사이에 내가 많이 변한 건지도 모르겠다.
- 눈에 띄게 후련해보이는 그 애는 저녁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한 달 전에 머리 싸매면서 식사메뉴에는 관심도 없던 핀구여서 좀 웃겼다. 그리고 나한테 어떤 영화의 여주인공 같다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하나도 안 닮아서 자꾸 웃기다. 오해 살 만한 행동 아닌가 정말루..~ (ㅋㅋㅋ)
- 내일은 어떻게 잘 쉬어볼까, 오랜만에
-팬타에서 한 번 불안이 올라왔는데 상담 때 배운 방법으로 스스로를 달래봤다. 친밀한 누군가에게 무작정 토닥토닥 위로받고 싶었는데 처음으로 그 방법으로 진정이 됐다.
-하필 쇼생크탈출을 30번 봤다는 말에 집에 오는 길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다시 만나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회의 하루 전 새벽에 누군가 문제제기를 했다. 옳은 말이지만 골치가 아팠다. 권력의 불균형은 결국 약자가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런 문제 따위로 고민하며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소용이 없기 때문에..
-오늘도 그 친구는 갑자기 내 옆에 나타나서 말을 걸며 친근하게 이것저것 얘기했다. 오해 살 만한 행동 아닌가 정말루..~
오늘 오랜만에 만난 오랜 친구가 살 빠지고 훨씬 건강해보인다고 한다. 역시 어깨를 핀 효과는 엄청나다(?)
얼마전 퇴사한 동료가 편지에 써준 말이 자꾸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뭔가 경력들이 진짜 신기하고 특이’하다고 ㅋㅋㅋㅋㅋ 거기에 힙합뮤비 감독이 추가될 판이다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학교 우리과 중에 나같은 경력은 전무후무할 것 같아서 웃기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지난번에 망설였던 한 발을 내딛은 것 같고, 영상이 더 즐거워졌다. 친구가 나를 보며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부럽다고 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는데, 하루하루 새로워서 좋다.
요 몇 년 간의 일들이 또 주마등 처럼 지나가고, 살아온 범위가 너무 넓어서 나에 대해 점점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ㅋㅋㅋㅋ그냥 이제 좀 이상한 사람의 영역에 들어선 것 같다.
그리고 요즘 친하게 지내는 00년생들이 웃기다. 진짜 웃기다 00년생들 최고다
거의 20년 만에 어깨를 펴고 지내게 되었다. 어깨를 펴니 보기 좋다는 말도 처음으로 들었다. 그간 여러 운동을 했지만 지금처럼 뚜렷하게 변한 건 처음이다, 역시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었을지.
나한테 ‘ㅋㅋㅋㅠㅠㅠ’ 쓰지 말라던 사람이 생각난다. 찌질하게 좀 살지 말랬다. 지는.. 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족혐오 같아서 알겠다고 했다. 그래도 그 친구의 말들이 당시의 정신상태에 많이 도움이 됐다. 습관대로 사는 걸 벗어나야한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한다. ‘정상인’의 범주에 가까워지며 느끼는 건 의외의 쾌적함이다. 그래도 딱 여기까지 아닐까.
요즘 유독 정신(..)이 안정적이어서 주말에 알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퍼즐게임을 많이 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해둔 할 일은 다 하고 있다. 특히 이번주부터는 토요일에도 워크샵을 듣고 있는데, 그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사실 집 밖에 있는 걸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요즘 생각한다. 예전 조직에서 일할 때 번아웃인지 뭔지 아무튼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없었고 그래서 그 뒤로 혼자 보내는 시간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혼자의 시간이 생긴다고 해서 이걸 내가 생각만큼 의미있게 보내는 것 같지도 않다고 깨닫고 있다. 퍼즐게임이나 하지.. 차라리 사람들이랑 무언가를 하는 게 혼자 누워있는 것 보다 나은 것 같다. 근데 그 '무언가'가 꼭 '일'일 필요만은 없다는 것도 최근에 깨닫고 있다. 재밌는 걸 하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워크샵을 처음 등록했을 땐 어떤 포폴을 쌓아야 내가 외주로 돈을 더 벌 수 있을까만 생각했는데, 두 달 정도 수업도 듣고 사람들이랑 얘기도 하다 보니 그냥 이제는 재밌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그게 죽이되든 밥이되든. 돈이 될 필요는 없다. 재밌는 게 짱이다.
사람들이랑 있는 걸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또 생각이 드는 건, 최근 상담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루고 있어서 그렇다. 나는 집 안에서 부모님이랑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더더욱 밖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걸 좋아했다. 저녁에도 밤에도 놀고싶어했다. 애들이 밤에 노는 건 금지(?)되어 있으니까, 더 짜릿하게 재밌기도 했었다. 아무튼 나는 혼자 있는 걸 안 좋아했다. 게임도, 언제나 온라인에 랜선친구들이 있어서 밤새 했었던 거지.
쓰다보니 횡설수설 레전드지만 아무튼 최근엔 그렇다. 지금 생활도 정신도 안정적이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오늘은 2019년 이후에, 독일에서 돌아오고 나서의 내 정신상태가 어땠는지 과거의 블로그 글을 보면서 좀 상기시켜봤다. 20-21년도에 불안정한 건 알았어도 22년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사실 그 시기가 머리에서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나는 그때 여름에도 꽤 힘들어하고 있었다. 명절 할머니네 집에서도, 운동하면서도, 그리고 수시로 스트레스 받고 공황이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공황 비슷하게 올라왔던 게 홍콩에서였는데, 그 뒤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일들로 내가 많이 변했기 때문인지 올해 5월 전후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냥 그 때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물론 그 때의 모든 관계들이 지금 내 곁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리고 그 빈 자리들에 새로운 인연들로 다른 관계로 채워지고 있어서, 또 그만큼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거겠지.
이제 한 두 발짝만 떼면 앞으로 쭉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해오던 관성이 있어서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이만큼 왔으니까 뒤를 좀 돌아보며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불안이라는 안개 속에서 그래도 길을 잃지는 않았다고. 사실 후회도 아쉬움도 많지만, 쥐고 있을 수 만은 없다. 미안하게도. 안개가 걷힐 수록 후회가 커져서 혼란스럽지만 그렇다고 뒤돌아 서있을 수는 없으니까, 일단은 앞으로 가야한다.
요즘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긴한데, 한 달 만에 근육이 2키로 늘고 체지방이 4키로 줄었다.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다..; 심지어 과체중도 아니고 표준체형 범위에서.. 요즘 몸무게는 크게 변화 없길래 그런가보다했는데 근육이 이만치 늘었을 줄이야. 심지어 체지방량이 18%다. 20% 미만으로 떨어진 게 인바디 재고나서 처음인 것 같다. 지금 한창 운동선수 시절인 초5때 몸무게가 되었다.
운동도 하고 집 와서도 청소하느라 바쁘고 이것저것 병원도 많이 다니고 가끔 야근도 하고 영상워크샵도 듣느라 요즘 좀 바쁘긴 했는데. 약을 바꾼 것도 한 몫하는 것 같고. 암튼 결과가 거짓말 처럼 좋아서 인바디 기계 고장난 줄 알았다.
근데 이렇게 누가봐도 건강한 몸이 되었어도, 가끔씩 (플러팅하는) 다른 사람들이 왤케 말랐냐하는 몸이 되었어도 내 눈엔 그냥 평범 정도로 보이고, 군살이 있는 곳만 신경쓰인다. 연예인들 몸이 아닌 이상 자신의 몸에 만족하기 힘든 사회다.
어제오늘 미뤄둔 모든 일들을 다 하고(고양이 화장실 전체갈이는 아직이지만..) 쓰는 최근 영화 리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悪は存在しない, 2024)
하마구치 류스케의 개쩌는 신작이래서 달려갔는데 머리에 물음표 백만개 띄운 채로 극장에서 나왔다. 영화를 배우고 보면 더 좋을 법한, 영화적 장치들이 많은 것 같다. 다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난해한 결말만큼이나 명료한 것 같다. 제목에 있으니까(?)
Fly Me to the Moon (但愿人长久, 2023)
홍콩에서 본 영화. 엉엉 울면서 나왔다. 마지막에, 왼쪽 사진에서의 장면이 정말 슬펐다. 예고하지 못한 갑작스런 이별을 이보다 더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싶었다. 자매들의 서로 다른 삶의 길도 잘 담겨서 좋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너무 좋았다. 영화 속 아내이고 딸이고 여친이고 여행가이드였다.
얼핏 감독의 첫 장편이라고 본 것 같은데, 다음 작품도 기대되고 한국에서 한 번 더 보고싶다.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2023)
이것도 홍콩에서 본 건데, 사실 이거야 말로 기대를 하고 보러 갔는데 진짜 최악이었다. 독일 할배가 만들어내는 동양 중년남 판타지. 아름다운 포스터와 그렇지 못한 정서. 마지막에 우는 장면은 연기가 훌륭한 만큼 조커 같기도 했다(조커 안 봄)
르네에게(2023) : 뮤직드라마(?) 같았던 영화. 뭐.. 다 좋다 해도(사실 많이 심심했다) 사운드가 아쉬웠다. 노래부르는 장면에 비해 다이알로그가 너무 작아서 어색함이 느껴졌다.
퓨리오사(Furiosa: A Mad Max Saga, 2024) : 전작이 굉장히 잼썼기 땜에 기대하고 보러 갔는데 대체 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자살을 안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인 채로 나왔다. 나만 재미없나했는데 이걸 본 친구도 '주인공이 점점 뼈만 남는다' '크리스 헴스워스 연기는 대체 왜 그러냐'라고 해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싶었다. 굳이굳이 머리를 기른 이유도 이해되지 않았다. ㅋㅋㅋ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3)
최근 본 영화 중에 가장 인상깊었다. 좋았다, 별로였다를 떠나서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영화였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도 참 치열한 것 같았다. 조너선 글레이저의 오스카 수상소감까지 영화의 한 부분이라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영화적 체험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시도한 영화 같다. 화면과 사운드의 이질감 그리고 동시에 화이트노이즈 정도의 불쾌하고도 생생한 경험은 영화관을 나와서 우리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극장을 나오면서 생생하도록 잘 들리는 복도의 발걸음 소리, 사람들의 조용한 말소리, 화장실의 환풍기 소리 등. 그리고 거기에서 아 내가 살아가는 곳이 영화 속 나치의 사택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오늘 상담은 좀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고 그래서 편했다. 아마 이것도 나름의 상담경험(?)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겠지.
A와의 더 좋은, 더 나은 결말이나 헤어짐 같은 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저지른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난 계속 감정적으로 끊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내가 나라서 그렇다. 이제는 인정해야할, 애착 장애가 정말로 있는 ‘나’라는 상태이기 때문에. A 곁에서 더 나아져서 끊어내기는 커녕 더 착취만 당했을 것이다.
다행히 살아남았다.
결혼을 안 한 건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이다.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지금의 내가 결국 터진 걸 보면 그때의 나는 시한폭탄과 다름없었다. 미안하고 슬프다. 그렇지만 결혼 후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면 더 상처였겠지. 모두 다 내 부족함 때문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혹은 결혼이라는 행위 등으로 내 부족함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안다. 스스로 채워줘야 한다. 괴롭게도. 마약과도 같은 애인의 품을 떨쳐내야 한다. 그렇다, 그건 중독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누군가 나를 어린애처럼 대하는 데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그만둬야 한다. 해내야 할 것들이 많다. 잘 할 수 있을까, 자신감은 없지만, 바뀌지 않으면 다음 번엔 진짜 죽을 수도 있다.
119 구급대원이 내 몸의 흔적이 2주는 갈 거라고 했다. 열심히 약을 바른 덕분에 일주일만에 없어졌다. 난 짱이다.
어제 시작된 부정 출혈에 몸도 안 좋고 배도 아팠는데 그럴 땐 타이레놀을 먹으라는 의사쌤의 말을 기억해냈다. 먹고 나니 꽤 괜찮아졌다. 역시 짱이다.
내 상상 속에서 나는 A에게 위로받는 걸 생각했지만, 이제 흰 가운을 입은 병동의 의사쌤이 곁에 있는 상상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괜찮아진다. 상담쌤은 A가 아닌 내가 나를 위로하는 상상을 하라고 권했지만, 아직은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상상 속의 A도 흰가운의 의사도 결국에 나라는 것을 언젠가 깨닫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인내한다.
자존감 관련 책을 읽어봐도 소용이 없다. 자존감 이전에 ‘나’ 자체가 없는 기분이다. 생각해보니 요즘 정말로 그랬던 것 같다.
3월에 네가 다시 연락을 줘서 오랜만에 보던 날, 그래서 처음 우리집으로 가던 날. 옆좌석에서 너는 나에게 ‘부모님 뭐하시냐’고 물어봤지. 사실 우리집에 가자고 할 때부터, 부모님 뭐하시냐고 물을 때부터 네가 날 뜯어먹을 생각이란 건 눈치챘지만 아빠 돌아가신 것조차 네가 까먹었을 줄이야. 그정도로 관심없었을 줄이야. 그리고 마지막에도 너는 아빠 돌아가신 후에 공황이 생겼다고 말하는 나에게 네 어릴적 트라우마를 얘기했다가 나중엔 내 공황은 가짜라고 했지.
세상에 너보다 불쌍한 사람은 존재해선 안 되는 거야, 맞지?
나도 아직 아빠를 잃은 충격과 슬픔, 누군가 위로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올라오지만, 너랑은 다를 거야. 다르고 싶어, 달라야해.
사실 어제 아침에 울면서 사과했던 게 진심은 아니었다 그치만 너한테 미움 받기 싫은 건 진짜였어 그래서 그렇게까지 했던 건데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니 문득 고등학생땐가, 엄마아빠가 싸울 때 아빠한테 울면서 소리쳤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진심으로 울었다기 보다는, 그 상황이 싫어서, 모면하기 위해서, 혹은 나에게 정당성과 우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울었었지. 그 뒤로 그런 큰 부부싸움은 없었고. 하지만 아빠 때문에 화나서 손목을 긋고 싶었던 적은 있었어.
10년 남짓 전의 일인데 그때랑 닮아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 울고 사과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너는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고 나무랐지. 네 가스라이팅이 안 먹힌 이유는 네가 나를 몰라서 그랬던걸거야. 너는 정말, 나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까.
기나긴 자해 행위의 끝이네. 헛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난다. 선배가 알려주기 전까지 몰랐는데, 이제야 깨달아버렸네. 아빠가 고양이 치료따위에 쓸 돈 없다고 했을 때, 손목을 긋고 싶었던 것처럼. 나도 뭔가.. 내 인생이 괴롭다고 소리치고 있었나봐. 결국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왔고.
사랑이었을까? 근데 내가 너를 전부 사랑하진 못했는데. 그럼에도 너한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의 자해였을까. 어이가 없네..
결국 한밤중에 걔가 내 집에 찾아왔다. 3번의 거절 끝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눴다. 이번주말에 같이 보내자했지만 결국 오늘 새벽에 부산으로 떠났다. 정말로 진짜로 그가 퇴사를 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배운대로 학습한대로 되지 않는다. 누구보다 자기검열이 심하지만 애착의 부분에서는 그게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냥 마음이 가는데로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바라야하는 건 그 과정에서 내가 나를 지킬 수 있기를.
마음이란 건 참 마음대로 안 되지. 이번의 이별이 당분간의 것이기를 빈다. 여름쯤에 당당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가지 않는 시간들을 어떻게 가게 할지는, 고민이다.
담배를 나눠 피고 서로 다른 갈래로 헤어지기 직전, 잘 지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걔는 몸을 자기 갈 방향으로 비스듬히 돌린 채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약간 어이없다는 혹은 귀찮다는 듯이 ‘아주 나중에 보자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쪽팔려서 어떻게 만나냐고. 그 모습이 참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멋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냥 똥가오(..)밖에 남지 않은 모습. 그 뒤 걔의 말을 이해하고 충격 속에 슬퍼하는 와중에도, 걔의 마지막 모습은 떠올릴 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사람이 그렇게 없어보일 수가 있나.
그냥.. 걔가 나를 그렇게 찌질하게 대하면 나도 그냥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좀.. 누리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자존감 회복이 이상한 데서 되는 것 같지만.. 그치만 니 인생은 빚밖에 안 남은 개인회생 5년 굴레 초입이지만 나는 돈이 좀 많은걸.. 어쩌누..
결핍에의 욕구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상담쌤한테 추천 받아 <애착 장애로서의 중독>이란 책을 읽고 있지만, 맞는 말도 별로 아닌 말도 있는 것 보면. <소유냐 존재냐>도 추천받았지만, 사실 너무 철학적인 책이고 나는 100% 소유파(?)이기 때문에..
부족하니까 갈구하고 집착하고, 만족하면 다음 결핍을 찾아 떠나고. 그럼 그렇게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행복해지는 걸까. 그걸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나, 하하.. 그만 만나자고 하는 이유가 "질렸어", 더 풀어 이야기하면 더 이상 흥미 없어, 정도이려나. 역시 원인은 만족해버렸기 때문에. 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헤어진 연인들이 그랬고 이 말을 또 한 번 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사실 그건 큰 문제 아니고, 문제는 눈 앞에 영원히 가지지 못할 것 같은 상대가 역시 닿을 듯 말 듯한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는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내일모레 상담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하나. 다 제 잘못인 걸 아는데 이제와서 나를 고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받아들이고 이 상태에서 최대한 행복해지고 싶다. 그 끝이 낭떠러지일지라도. 이미 겪을 수 있는 최악과 모든 불행은 다 겪었지 않나.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안온하고 진정이 된다. 조금 눈물이 날 뿐.
어제 마사지샵(?)에서 주구장창 2006년쯤의 노래를 들어서 그랬을까, 특히 너를 생각나게하는 ‘더 넛츠’의 노래가 나와서 그랬을까. 오랜만에 네가 꿈에 나왔어. 언제인지 기억 암 나는, 조금 친했던 친구 1명과 그리고 언제나처럼 ‘걔’도 나왔고. 꿈은 생각보다 행복한 내용이어서, 이대로 계속되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해. 여태 네가 나오면 다 악몽이었는데, 아름다운 산의 풍경을 찍기도 했지.
‘행복은 금세 싫증나지만 비극엔 끝이 없다’는 말이 내 삶을 관통하는 것 같아. 그래서 너 역시 끝이 나지 않고 12년이 지나도록 내 꿈에 나오는 걸까. 난 항상 비극만 쫓고 있는 것 같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 (2019) : 이상한 추억팔이 아류작(?) 같은 영화. 왜 만들었을까,,
폴른 리브스 (2022) :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2017년의 은퇴를 번복하고 만든 작품. 담백하게 맛 좋은 휴먼코미디. 전작들이 궁금해졌다.
빅슬립(2023): 가출청소년을 거두는 공장노동자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그 아저씨를 사랑하는 것 같은 영화.
6번 칸(2021) : 중반쯤 보고나니 90년대가 배경이었다는 나름 충격적인(?) 반전. 그냥 빈티지 캠코더 쓰는 줄 알았지. ㅋㅋㅋ아마 잠깐의 여행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북부의 눈.
시민 덕희(2023) : 순전히 배우들(+무대 인사) 때문에 보러간 영화. 다 보고나니 약간 몇 년 전에 무슨 중국영화 본 후에 학교폭력 근절 메시지 뜰 때의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