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14


1. 그거슨 12일 오후.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라는 계정이 만들어지고, 그게 리트윗된 걸 보았다. 곧 IT회사 옆 대나무숲 이런 게 만들어지더니 13일(어제)이 되니까 정말 대나무 돋듯 우후죽순 생겨났다. 계정들이.. 어제까지 제일 빡치는게 시댁 대나무숲이었는데 오늘 여성활동가 대나무숲보고 박빙이 됨. 시댁은 혐오와 짜증이라면 여성활동가는 분노랄까.. 아니 그렇게 성폭력이 빈번히 일어나는지 정말 몰랐다.
 출판사 계정의 원류(?)는 출판사X라는 내부고발 계정이었다. 그런데 그 계정 담당자가 그 일로 인해 해직되고,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 만들어진 게 출판사 옆 대나무숲 계정.
 중학교때 즈음 한 번 출판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엄청난 허상이었단 것을 오늘에서야 두눈으로 목격했다. 활동가가 되고 싶기도 했는데, 역시 만만치 않다. 요즘은 이렇게 살기도 싫고 그렇다고 저렇게 살기도 싫다. 세상사는 게 생각보다 훨씬 더 진흙탕이란 걸 요즘 느끼고 있다.

2.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말 뒤에는 '그래서 인간은 모두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인간은 평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노력(투쟁)해야 한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3. 한 번은 약간 극단적인 상대주의까지 인식이 나아갔던 적이 있다. 상대주의자가 되었다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음 일종의 '취존',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미개와 발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렇게.. 물론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해야했다. 과연 어디까지 존중해줘야 하는지. 그런데 그에대한 답이 이미 엥똘레랑스란 형태로 존재하더라.
 위 문단은 사실 밑밥(?)이고 오늘 또, 갑자기(..) 역사의 진보에 대해서 재고하게 되었다. 무조건 현대가 과거보다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해놓은 게 아무 쓸모없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의 진보의 척도가 있다면 아마 그건 문제제기의 영역일 것이다. 과거에는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던 영역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 예를들어 가부장이 그렇고, 장애인의 성이 그렇고. 그리고 소수와 약자(소수란 말에 이미 약자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가 그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서 살아가는지가 그 척도가 될 것이다.

4. 예전부터 나는 약간 시간을 초월하는 삶을 살고싶어 했다. 이건 아마 역사를 공부─깊게 공부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하면서 들게 된 생각인 것 같다. 그러니까, 시대의 담론에 물들지 말고 어느 시대에서나 보편적일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같은 거 말이다. 물론 스스로도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가치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마저도 시대의 산물일 것이니. 그만큼 넓은 시야를 갖고싶어했던 것이다. 가끔 인물들을 공부하다보면 오래 전의 사람인데도 아직까지 그들의 사고가 어색하지않게 통용되는 이들이 있잖은가. 스피노자라던가.. 그러고보니 엄청난 걸 바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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