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상담 세션에서도 그렇고, 요즘 지난날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열심히 도망쳐온 과거를 쳐다볼 용기가 좀 생겼다. 상담선생님은 그 당시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주변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초라하고 대화도 잘 통하지 않는 내 주변이 모든 것들이 싫었다. 애정이 가지 않았고 언젠가 반드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정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가끔씩 내 말을 이해하는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과도하게 서투르게 애정을 전했고 그런 날것의 마음은 닿기도 전에 부숴졌고 상처받고 더 외로워진 날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루하루는 잘 이어지지 않았고 그저 단절의 연속이었던 것도 같다. 잊어버리고 싶은 감정들과 함께 많은 기억도 함께 뒷편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상담선생님은, 지금 어엿하게 물질적 독립을 갖춘 어른의 내가 있지 않느냐고, 지금의 나를 그때의 내가 보면 위안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글쎄, 글쎄.. 그때의 나는 성인이 된 나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기 싫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기 싫었다. 어른이 되어서, 학교를 졸업해서 그 애와 헤어지는 게 싫었다. 한편으론 어른이 되어서, 나이를 먹어서도 영영 걔를 잊지 못할까봐 무서웠다. 잊어버리는 것보다 잊지 못하는 게 더 두려웠다. 그 감정적 할큄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는 그게 전부였다. 어떤 어른이 되고싶다는 건 없었다. 두 번 다시 못 볼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슬플 뿐이었다. 졸업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그러기도 싫었고, 그러다 그냥 그 이후의 모든 건 맞닥뜨림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도, 살지 말아야겠다는 것도 없었다. 유일한 지표는 내가 원하는 것이냐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10여 년 살고나니 막다른 곳에 다다라 결국 다시 뒤를 바라보게 되었지만.
글쎄,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이없지 않을까. 그렇게 실망하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더니 무언가가 되긴 했구나. 그때 생각한 것, 하던 것, 예측한 것, 상상할 수 있었던 모든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론 지독하게도 음악취향은 똑같구나. 그때 내 주변에 이런 어른은, 이런 삶의 모습은 없었는데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조금은 더 기대를 가지고 희망과 함께 덜 실망할 걸. 그럼 조금 더 사랑을 다양한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었을텐데, 그만큼 덜 상처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 때를 생각하면 그 서투름에 넌덜머리가 난다. 사랑도 줘본적이 있어야 잘 줄 수 있다.
그래도, 그렇게 날 것이었던 10대와 자기혐오의 20대를 건너 지금의 나에게 도착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의 어쩌면 1/10 정도는 나도 내가 좋아졌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쉽게 왔을 길을 요령 없이 지도도 없이 도착했다. 조금 억울하지도하지만 어쩌겠나. 높았다가 낮았다가 하는 것이 그나마 공평한 삶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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